첫눈에 들어온 만리포는 죽음의 바다 그 자체였다.

"저곳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흘린 '죽음의 기름'은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을 경악케 했다.

"세상에…"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9일 오전 10시 최악의 기름유출 피해지역인 만리포 일대를 찾은 기자는 취재차량에서 내리는 순간 심한 어지럼을 느꼈다.

바닷바람을 타고 해안에서 몰려드는 원유 냄새가 너무 독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황해가 아니라 흑해였다.

만리포로 들어가는 왕복 2차선 32번 국도는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오가는 방재차량,경찰차량,예비군 수송차들로 꽉 찼다.

상공에는 헬기가 쉴새없이 오가며 무엇인가를 실어나르고 있었다.

만리포 해수욕장 입구는 적십자사와 구세군에서 나온 지원차량과 자원봉사 인력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테러 피해 지역 같았다.

서둘러 도착한 해안가에는 수천명의 군인과 경찰,민간인들이 줄지어 선 채 양동이로 기름덩이를 퍼나르고 있었다.

"젊은 꿈이 해안선을 달리면 산호빛 노을 속에 천리포도 곱구나"라고 적혀 있는 '만리포사랑노래비'를 무색케 했다.

노래비 옆에 마련된 임시 원유저장소에는 사람들이 퍼나른 원유로 가득했다.

저장소 앞에 줄지어 선 노란색의 대형탱크로리들은 저장된 원유를 펌프질해 외지로 실어갔다.

최석윤 전국해양오염방재조합 장비팀장은 "대형 탱크로리만 21대,유해수기 5대,카고트럭 3대 등이 동원돼 현장에서 퍼담은 원유를 인근 대산 현대정유탱크로 보내고 있다"며 "어제부터 원유를 퍼담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 언제쯤 일이 마무리 될 지 감도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양방재청 소속 인력 200여명과 해경과 서산군,군,자원봉사자 등 1만여명이 투입됐지만 방재 요령,안전교육 등이 미흡해 2차 사고도 우려된다.

만리포 해수욕장 주변 상인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청명횟집 김인구 사장(50)은 "대책이 없다.

정부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떡진 원유덩어리를 퍼담았다.

횟집들은 해안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퍼올리는 물에서도 기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충남도 관계자는 "수많은 굴 조개 어류를 양식하는 가로림만까지 기름띠가 확산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가로림만은 태안군 일대에서 가장 많은 양식장이 있는 곳이라는 설명이었다.

충남도는 태안군 양식어장의 피해면적이 3500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태안군 이원면과 원북면 소원면 근흥면 등을 잇는 해안 150㎞에 유막이 형성돼 있으며 만리포외 신두리 학암포 등 6개 해수욕장이 기름으로 피해를 입었다.

조류와 북서풍의 영향으로 굴 바지락 전북 해삼 등 양식어장 445곳 5647㏊중 3500여㏊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충남도는 내다봤다.

환경피해 전문가들의 진단은 이곳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안병호 해양환경팀장(49)은 "유출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 주변 환경이 완전복구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안지역 기름 제거에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오후 4시가 되자 현장 분위기는 다시 탄식으로 가라앉았다.

밀물이 끌고 오는 시꺼먼 기름 물결로 해변이 순식간에 다시 기름천지로 변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인 신두리사구 보호지역에서 철새들이 기름을 뒤집어 쓴 채 죽어가는 모습은 태안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었다.

만리포·태안=김동욱/오진우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