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기 전에 매니저는 토를 달았다.

'기부' 위주로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얼마 전 어떤 기자가 기부 이야기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를 만나면서 기부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나와 같다면' '혼잣말' '허니' 등으로 유명한 가수 김장훈씨(40)다.

김씨는 연예계의 '기부천사'로 통한다.

그는 1년치 '기부 가계부'를 갖고 계획적인 기부를 실천한다.

가출청소년 쉼터버스'꾸미루미'를 운영하는 등 1998년부터 지금까지 30억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했으면서도 보증금 5000만원의 월세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알려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기부 액수가 과장됐다는 말부터 '기부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그의 기부활동을 전하는 기사 아래에는 네티즌들의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방송활동으로 바쁜 김씨를 탄현 SBS공개홀에서 만났다.

기부에 관한 언급을 워낙 꺼리는 탓에 공연에 대한 질문을 한참 던지다 겨우 '기부'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냈다.

―기부에 대해 질문받는 게 싫은가요?

"질문을 받는 게 싫다기보다 제가 기부한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연예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조심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대로 의미를 갖고 기부를 하는 것이고,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뜻을 갖고 사는 것이니까요."

―명예욕 때문에 기부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요.

"정치인들이 연말에 사진 찍기 위해 100만원어치 사과 상자 몇 개 갖고 오는 것을 보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욕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부를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기부를 합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돈과 명예는 채울수록 스스로가 작아지지만 버릴수록 나 자신은 커진다는 걸 거듭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가수들보다 유난히 공연을 많이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가수는 두 번 죽는다고 합니다.

무대를 떠날 때와 생물적으로 죽을 때죠.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무대에서 느끼는 팬들의 시선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들에게 받은 것은 당연히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무대를 내려와서는 그만큼 허탈할 것 같은데,허탈감을 채우기 위해서 기부하는 것은 아닌가요.

"전혀요.

저는 노래를 부르고 돌아서는 순간 다음 무대를 생각하기 바쁩니다.

'그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나요.

"사람들은 제가 가난하게 살면서 기부하는 줄 알지만 절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거처할 곳과 월 200만원가량의 수익처도 안겨 드렸고,명품 옷도 사고 싶은 만큼 삽니다.

남는 돈으로 기부하는 거죠."

―지금 월세 아파트에 산다고 들었습니다.

"한때 7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BMW)를 몰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수입이 좋아졌지만,업무용 승합차 한대면 충분합니다. 요즘 포장이사 서비스가 좋으니까 월세 아파트에 살아도 불편하지 않아요.

2년마다 옮겨 다니면 됩니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정직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면서 기획하는 방법과 사업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배웠지요.

무엇보다 열심히 살 자신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궁핍하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겁니까?

"(주저없이)허무주의죠.초등학교 1~3학년 때는 악성 빈혈과 기관지 천식으로 병원에서만 지냈습니다.

늘 답답한 생활이었죠.사춘기 들어선 마음 속에 늘 알 수 없는 먹구름이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파서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그 나이 땐 규명할 수 없는 혼란이 있게 마련 아닙니까.

그때마다 소리를 지르면서 위로를 받았죠.노래와 신앙이 없었다면 전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실제 그는 '지르기 창법'으로 유명하다). 그 뒤로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닥쳐도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가수가 됐을 때부터 기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 1998년이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부천 새소망의집과 성남 푸른학교에 가셨습니다.

그곳 아이들과 놀면서 정말 기뻤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어머니가 목사님이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란 영향도 큽니다."

―기부 액수는 1년에 어느 정도 됩니까?

"고정적으로 나가는 것은 1년에 2억원입니다.

그 외에 한두 번 정도 3억~4억원씩 기부합니다."

―기부의 기준이 따로 있습니까?

"하루에 2~3시간 정도는 꼬박꼬박 신문을 읽어요.

가수지만 연예란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대부분 경제,과학,IT면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죠.자연히 이공계 기피 현상이나 반크(해외에 잘못 알려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사이버 시민 외교사절단)와 같은 시민단체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신문에서 공부하고 여러 모로 알아본 다음 기부금을 줄 단체와 액수를 정합니다."

-본인의 기부활동을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느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제 생활이 후배들에게 미담은 될 수 있어도 귀감은 못 된다고요.

저도 그 말엔 동의합니다.(웃음)"

글=박신영/사진=허문찬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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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은…

△1967년 서울 출생
△1988년 경원대 영문과 입학(중퇴)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에 이어 지금까지 '고속도로 로망스' '내추럴' 등 9개 앨범 발표
△1998년 '새소망의 집' '푸른학교' 등 복지기관 후원 시작
△2006년 6월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버스 '꾸미루미' 운영
△2006년 12월 KAIST 과학발전기금 5000만원 기부
△2007년 8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에 1억원 기부
△2007년 11월 제19회 아산상 사회봉사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