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상처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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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무나무 손바닥 크기만 한 잎사귀들이
고개 싹 돌린 채 변절해 있다.
오늘 아침 몇 날 밤의 한파가 겨우 기세를 꺾은 다음 베란다로 나가는 창문을 열었더니,잎사귀들 사력을 다하듯 따스한 햇살폭포 쪽을 향하여 해바라기 한 것이 하도 아픈 뒤틀림이어서 저런 배신이라면 아무 말 없이 긍정해주어야 한다고,부드럽게 용서해주어야 한다고,이파리마다 나는 부드러운 눈길로 쓰다듬어주었다.
(…)
좌우 균형을 잃은 체형이야 어찌되었든 살아야 한다고,살고 싶다고,제 육체를 한껏 비틀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저 단말마의 비명이 베란다 차디찬 타일바닥 위로 떨어져 뒹굴고 있다.
(…)
-이수익 '상처와 만나다' 부분
고무나무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처절하다.
그 불구의 몸짓이 사람에겐 배반일지 몰라도 고무나무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살 수 있다면 몸이 뒤틀려도 좋은 것이다.
생존에 관한한 논리로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본능의 영역이다.
목숨을 버리는 결단과 용기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본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굴욕이나 치사함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마음에 안들지만 살다보니 생각이 그렇게 바뀌어 간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