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널을 뛰고 있다.

어제는 환하게 웃더니 오늘은 엉엉 울고,내일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새침해지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하루 50포인트 정도 오르내리는 현상이 어느덧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일본도 주가가 날마다 춤을 춘다.

"이제 끝났구나"고 장탄식을 내뱉는 바로 그 순간부터 주가가 반등하고 환율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전 세계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세계 불균형과 엔 캐리 트레이드

국제 금융시장에서 확대된 변동성을 이해하려면 10년 전인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시 경제는 괜찮았지만 환율 등 외환 정책의 실패로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 드라이브를 걸면서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몰두했다.

여기에 세계경제의 엔진을 자임한 미국은 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내수 소비를 촉진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나고 미국은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지경으로 과소비가 늘었다.

예컨대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000년 1689억달러에서 올해 9월 1조4336억달러로 급증했다.

한국 일본의 외환보유액도 급팽창했다.

여기에다 유가 상승으로 중동 산유국의 외환보유액이 급증하면서 더욱 꼬였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세계 불균형(Global Imbalance)'으로 지칭하며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최대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유동성 급증과 자산시장 대호황

일본 돈을 빌려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불균형이었다.

1990년대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내야 했던 일본이 제로금리 정책을 펴 엔 캐리 트레이드를 촉발시켰다.

일본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조차 해외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에 몰두했다.

JP모건은 40조엔(320조원)의 일본 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불균형과 엔 캐리 트레이드는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팽창을 초래했다.

아시아 국가에서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만큼 시중에 현지 통화가 풀렸고,이 돈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몰렸다.

여기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금리를 연 1%로 내리는 저금리 정책을 펴자 전 세계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돈을 빌려 주택을 매입하는 열풍이 불면서 처음 2년간은 낮은 고정금리를 적용하고 그 뒤 28년 동안은 변동금리로 돈을 빌리는 주택담보대출이 성행했다.


◆서브프라임 충격과 복합 금융위기

2004년부터 통화긴축 모드로 전환한 미국이 16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뒤 처음으로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였다.

올해 3월 미국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모기지 대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미국 내부의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8월 프랑스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자 전 세계가 긴장했다.

미국 FRB는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고 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조치는 달러자산(국채 등)의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달러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시아와 중동 산유국에서는 달러로 외환보유액을 쌓는 것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세계 외환보유액 가운데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70.5%였으나 올해 2분기에는 64.8%로 낮아졌다.

이로 인해 달러 가치가 더 떨어졌다.

그러자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위험축인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작스럽게 풀리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전 세계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펀드 환매 요청이 늘어나면서 주식과 채권 값이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급락하기도 했다.

엔화를 많이 빌려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의 환율이 최근 급등한 데는 일본 자금이 빠져 나간 영향이 적지 않았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돌 정도다.



◆변동성 확대는 복합 위기에서 기인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커진 것은 금리와 환율 등 다른 금융 변수들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는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뿐만 아니라 각국 통화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도 많이 들어와 있는데,이들이 환율과 금리 변동에 따라 주식과 채권 등을 매도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원화 자산에 투자하는 차원에서 한국 주식시장에 돈을 넣어 둔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불안한 만큼 조그마한 소문에도 쉽게 움직이는 '조울증'은 변동성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예컨대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로 바뀐다는 소문이 나면 주식과 채권을 팔겠다고 난리를 치고,반대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된다는 소문이 돌면 다시 투자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환율과 금리의 변동에 따라 통화 포지션을 바꾸겠다는 투자자들이 늘어날수록 주가와 환율은 더욱 요동칠 수밖에 없다.

특히 환투기를 전문으로 하는 외국의 헤지펀드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들락거리면서 외환시장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향후 방향은

1985년 미국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회의에서 엔화 가치 절상을 결정했던 '플라자 합의' 때만 해도 주요국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달러가 이미 충분하게 떨어졌는지,아니면 더 떨어질 것인지 여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매일 매일 전망이 달라지면서 외환시장이 혼돈 상태에 빠졌다.

1999년 유로화 출범과 중국의 부상,일본의 경기 회복 등이 맞물리면서 달러가 주도해온 세계경제 질서(팍스달러리움)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달러 가치가 당분간 하락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고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는 등 전 세계 유동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와 중국의 대응 등에 따라 세계 경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가도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강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