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지난 22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법 심의에 참여한 한 여당 의원이 법안을 처리한 뒤 한숨을 쉬듯 내뱉은 말이다.여야 의원들이 자랑스러운 듯이 서로 법안 처리를 치하하며 악수를 나눈지 불과 몇분 만이다.언론에 공개된 회의석상에서는 말할 수 없었지만 법안이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스스로도 잘못됐다고 보는 특검법을 정략적으로 처리하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일까.

지난 3일간 진행된 특검법안 처리는한마디로 졸속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삼성의 당선축하금 공여 의혹을 특검 대상에 포함할지를 놓고 내내 정치공방을 계속했다.

'당선축하금 등' 6자를 넣을지 말지를 두고 다투는 사이에 특검법은 국회 전문위원들에 의해 30여분 만에 '급조'됐다.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법안에 한나라당의 법안을 기계적으로 합친 것에 중복되는 내용만 뺀 것이다.

여야 모두 "서로의 입장이 잘 반영됐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정쟁속에 경영권 승계 문제를 포함할지,검찰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을 진행하는게 옳은지 등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있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법안 처리후 걱정스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졸속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2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시트콤의 속편은 계속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뒤늦게 수사대상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다음 정권 초기부터 기업 죽이기 분위기가 진행됐을 때 국가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김명주 의원) "특검의 수사대상은 검찰과 관련된 권력비리 의혹으로 한정돼야 한다"(이주영 의원) 등의 주장이 이어졌다.모두 전날 소위에서 법안을 합의처리했던 소위 소속 의원들이다.김 의원은 "소위가 기자들에게 공개되는 통에 졸속 심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지도 모를 삼성 특검법 심의와 처리를 얼렁뚱땅 해놓고도 언론운운하며 핑계를 둘러대는 대목에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