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4시30분 서울 신당6동 노인종합복지관.어림 짐작으로 70세는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일본어 배우기가 한창이다.

3명의 일본인 강사들이 일본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는데도 그럭 저럭 따라가는 분위기다.

'노래로 배우는 일본어' 시간에는 아이들 같은 장난기도 동원된다.

수업이 끝날 즈음,결국 가요 '남행열차'로 흥이 이어졌다.

강사 중 한 사람인 기타다 다이키씨(27)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다음엔 꼭 노래방에 한번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이지만 어른들은 꽤나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배우는 보람이 있다면 물론 가르치는 보람도 있다.

자원봉사여서 더 보람차다.

기타다씨와 함께 가와츠노 요코(21),스즈키 아케미씨(60)도 수업을 이끈다.

나이와 목표는 각기 다르지만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타다씨는 대학을 졸업한 취업 준비생이다.

신문기자가 꿈이다.

꼬집어 얘기하면 마이니치신문에 취직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삶의 향기를 지닌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하는 신문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는 2005년 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번 시험을 봐왔다.

필기시험은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면접에서 뭔가 나름의 경쟁력을 각인시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한 나라의 언어 실력을 쌓고 그 나라 전문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한국이 떠올랐다.

마침 한국에 친구가 한 명 있어 그의 조언을 듣고 지난 1월 한국을 찾았다.

다른 2명의 강사와 마찬가지로 고려대 한국어문화교육센터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매주 금요일엔 동대문복지관을 찾아 치매노인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는 "어르신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혹시 상처받을 만한 이야기를 해도 흘려 버리라는 말을 들었다"며 "실제 만나 보니 너무 환대해줘서 오히려 송구스러울 정도"라고 소개했다.

주로 함께 노래 부르고 레크리에이션으로 즐거운 시간을 만든다.

요즘에는 간단한 일본어도 가르친다.

치매환자들이지만 몇 마디 일본어를 기억해낼 때면 정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기타다씨는 말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달리 맘 속에 있는 것도 시원하게 꺼내 놓고 얘기하는 한국인을 깊이 알고 그들의 삶이 녹아든 문화를 배우면 나중에 기자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한국에 특파원으로 다시 오고 싶어요."

3명 중 가장 어린 나이의 가와츠노씨는 일본에서 몽골어를 전공하다 방향을 한국으로 완전히 바꿨다.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좇아 지난 1월 한국을 찾았다.

중국도 중요하지만 좀 더 가까운 한국부터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와츠노씨의 어머니가 중국어 통역사여서 자신은 한국을 좀 더 탐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에는 외국어대 국제관계과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와츠노씨는 오히려 어른들에게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운 분들이 많습니다.

손목시계를 뜻하는 우데도케,의자를 의미하는 고시가케 등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말이 있었구나 무릎을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스즈키씨는 흔히들 얘기하는 단카이(團塊)세대,즉 일본판 베이비붐 세대다.

지난 3월 직장에서 퇴직한 뒤 도쿄시내 시민회관에서 일본어를 자원봉사로 가르쳐왔다.

일본어 교사 자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5년 전 한국을 여행할 때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 시민회관 일본어 강의 때 알게 된 한국인 자매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도록 했다.

이 학생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지난 10월 고려대 한국어문화교육센터를 찾게 된 것이다.

3명의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은 호기심에서 한국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각자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공통점을 가졌다.

스즈키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나라로 여겨진다"며 "양국의 문화적.역사적 간극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규호 기자/김병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