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회사동료,거래처 사람,동창생들과 지난 1년간의 회포를 푸는 송년회 술자리 시즌이 다가왔다.

연초에 세웠던 절주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술에 푹 절어 보낸 삶을 반성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술잔을 돌리는 게 대한민국 보통 애주가들의 하나같은 모습일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허송세월하기 쉬운 연말.술에 대한 두려움과 절제심을 갖는 것만이 술의 바다에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

술은 절제하는 게 아예 끊는 것보다 어렵다.

술이 술을 부를 뿐만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술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내성이란 알코올 해독총량이 커지는 게 아니라 알코올 대사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말한다.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높은 혈중 알코올 농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또는 덜 취하게 되고 스스로 더 많은 양의 술을 요구하게 된다.

예전에 마시던 같은 양의 술로는 자신이 원하는 기분이나 술기운을 느낄 수 없기에 음주량은 자기도 모르게 늘어나고 절제가 쉽지 않은 것이다.

미리 주량을 설정하고 마시는 게 필요하다.

나이 들면 간의 알코올 해독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예전과 비슷하게 또는 더 많이 마신다면 간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 쓰러지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간질환에 걸려 여생을 고통받을 수 있다.

주당들이야 으레 그런 사람이라 치더라도 술을 못 마시던 사람이 최근 수년간 술이 늘었다면 이 역시 문제가 크다.

간과 뇌가 알코올에 적응해 내성이 생긴 것일 뿐 간의 알코올 분해능력이 향상된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술을 못하던 사람이 음주량이 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간 조직이 더 심한 손상을 받을 수 있다.

독한 술은 나쁘다하여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 소주나 와인을 찾는데 역효과가 날 수 있다.

1999년까지만 해도 23도였던 소주는 최근 19.5도 이하로 순해졌다.

하지만 이를 믿고 한두 잔을 더했다가 오히려 음주량이 늘었다고 하소연하는 이가 많다.

세계 3위의 와인 소비국인 프랑스는 심장병 발병률이 낮아지는 효과를 보지만 최근 간질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와인은 결코 도수가 낮은 술이 아니다.

10∼14도로서 맥주(4∼6도)보다 훨씬 높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남성의 하루 알코올 섭취 허용량은 30g으로 와인을 하루 두 잔(34g)이상 마시면 간에 무리가 가게 돼 있다.

주종이나 알코올 도수보다는 흡수되는 절대 알코올량에 비례해 간기능이 나빠짐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여성의 음주가 늘고 있다.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인 다사랑병원이 지난 5월 조사한 결과 직장여성의 34%가 한번에 소주 1병,맥주 4병 이상 마시는 과다음주자로 조사됐다.

음주는 여성에게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준다.

여성은 남성 음주량의 절반이 적정량이므로 같은 양을 마셨다면 남자보다 훨씬 빨리 간이 나빠지고 복부비만이 일찍 찾아온다.

진피의 탄력이 떨어져 피부가 거칠고 처져 보이며 머릿결이 상하며 여드름이 악화되고 무월경 생리불순 등이 뒤따른다.

여권 신장과 함께 늘어나는 여성음주를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사회는 관대한 음주문화를 갖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알코올남용(문제음주) 진단기준은 한달에 남성은 60g(소주 360㎖ 1병,맥주 500㎖ 4병) 이상,여성은 40g 이상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다.

주량 조절이 가능하지만 학습 운전 사회생활에 일정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고 점차 빈번하게 술을 마실 조짐이 있는 상황이다.

이보다 더 심한 '위험음주'는 하루에 마시는 알코올의 양이 50g이상이거나 1주일에 마신 총량이 170g(소주 2병반, 맥주 10병,폭탄주 12잔,와인 2병반,막걸리 4병반) 이상인 경우다.

방치하면 '상습적 과음'을 거쳐 '알코올의존증'(알코올중독)에 빠져 심신에 질환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음주자의 대부분이 문제음주에 해당하고 전체 성인의 20%가 위험음주에 해당한다는 추산이다.

이처럼 우리사회에 많은 위험음주자가 존재하는 건 취중실수를 '술 취해서 그런거지' 라며 넘어가는 관대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주일에 소주 2병 반 정도의 음주가 나와 사회를 망가뜨릴 수 있음을 명심하고 술독에 빠지지 않는 연말을 보내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전용준 다사랑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