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을 맞는다.

1997년 11월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이어 12월3일 정부와 IMF는 협상을 타결,'IMF 사태'로 불리는 'IMF 관리체제'가 가동된다.

한보 삼미 대우 동아 등 금융회사에 진 빚을 갚지 못한 대기업이 잇따라 쓰러졌고 부실이 쌓인 은행들은 강제로 다른 은행에 통폐합되거나 외국자본에 팔렸다.

1997년 말 33개였던 은행은 현재 18개로 줄어들었다.

'평생 직장'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많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떠난 사람은 물론 남은 동료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2001년 8월 정부는 'IMF 관리체제' 졸업을 선언했지만,그건 빚을 갚았다는 뜻일 뿐.지난 10년은 한국경제가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격동의 시기'였다.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외환보유액은 한 때 39억달러까지 줄었다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 2600억달러에 달한다.

곳간 사정이 넉넉해진 것은 좋은 물건 만들어 열심히 내다 판 기업의 공이다.

이제 와서 '안전운행'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기업들은 몸을 많이 낮췄다.

매출액 기준 상위 1000대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347%에서 지난해 83%로 크게 떨어졌다.

그 덕분에 국내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외환위기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반도체 LCD 조선 등은 세계 1위를 달리면서 글로벌 리더가 됐다.

다음 달 1일이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20주년이 된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삼성을 이끈 것.그 새 신세계 CJ 한솔 등이 분가했지만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16.8%를 차지할 만큼 한국 경제의 중추로 키웠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며 경영혁신을 주창한 결과다.

이 회장이 요즘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선친의 20주기 추모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음 달 5일로 계획했던 취임 20주년 행사도 뒤로 늦춰지거나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김용철ㆍ이용철 변호사의 비리의혹 폭로로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의 삼성 상황과 무관치 않을 터다.

몸살보단 속병이 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20주년 행사를 모멘텀으로 '뉴 삼성'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했는데,비리의혹 스캔들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도드라지면서 웃자란 것은 맞다.

미운털도 꽤나 박혔다.

자식을 삼성에 취직시키고 싶다면서도 납품가가 인색하다며 얼굴을 붉히는 중소기업인이 적지않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마녀사냥식으로 삼성을 매도하는 분위기는 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의 건강도는 글로벌 시장에서 리얼타임으로 평가된다.

시장은 한동안 직선주로만 달리던 삼성이 곡선주로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도 전기를 마련할 때란 얘기다.

이젠 삼성과 이 회장을 향한 채찍을 거둘 때가 된 것 같다.

오히려 더 많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양성,삼성과 이 회장에게 쏠린 관심을 분산시켜야 한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이 생겨날수록 삼성은 외부로부터의 곱지않은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궁 덕 산업부 차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