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I♥KOREA] 한중록 읽다 영감 얻어 '사도세자의 발라드'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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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오라스 형제 … 주말마다 홍대 앞 클럽서 록밴드 변신
서울 홍대 앞 공연장에 외국인 형제가 들어섰다.
치렁치렁 목에 건 목걸이,헐렁한 청바지,눈썹까지 두건을 눌러쓴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 손에 든 검은 서류 가방이 옷차림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미국 뉴저지 출신의 로버트 오라스(33)와 브라이언 오라스(32).이들은 데뷔 4년째인 록밴드 '코스모3(Kozmo3)'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맡고 있다.
이들의 본직은 대학 교수다.
형인 로버트 오라스는 세종대에서,동생인 브라이언 오라스는 한성대에서 영문과 전임강사로 영어회화와 작문을 강의하고 있다.
강단에도 이런 패션으로 나서느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로버트씨가 쾌활하게 웃어넘긴다.
"물론 강단에 설 때는 목걸이나 두건을 절대로 착용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거슬리기만 하니까요.
홍대 앞에서 공연하는 주말마다 대변신을 하는 셈이죠."
로버트씨는 올해로 한국 생활 10년째다.
미국에서 뉴욕대를 졸업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훌쩍 몸을 실었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살고 싶었죠.아시아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 끌렸습니다." 코넬대학 영문과를 수료한 동생 브라이언씨도 5년 전 한국으로 왔다.
"형이 미국으로 전화할 때마다 한국 생활의 매력을 강조하더군요.
특히 홍대 앞 공연 문화를 자주 자랑하기에 궁금증이 생겼죠."
어릴 적부터 음악에 심취해 있던 형제가 서울에서 밴드로 뭉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코스모3'라는 밴드 이름은 만물과 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따 왔다.
"한국인(김진옥,황오철)과 미국인 각각 두 명으로 이뤄진 우리 밴드는 두 가지 문화의 완벽한 조합입니다.
미국 록 음악의 전통과 한국의 최신 흐름을 섞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죠." 이들은 연주하는 모든 곡을 직접 작곡할 뿐 아니라 음반 표지 디자인부터 밴드 홈페이지(www.Kozmo3.com) 관리까지 하고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밴드 정보를 문서로 정리해 올 만큼 열정도 대단했다.
두 사람은 거칠지만 흥겨운 자신들의 음악이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첫 음반의 제목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얻었다.
이들은 노래를 통해 성 매매 반대와 같은 사회적인 주장도 펼치고 있다.
로버트씨는 최근 '사도세자의 발라드'란 곡을 내놨다.
"얼마 전 동양철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뒤주 안에서 아흐레 만에 죽은 사도 세자의 이야기가 특히 가슴에 스며들었죠.슬픈 내용이지만 독특한 해석을 덧붙여 단조가 아닌 장조로 작곡해 봤습니다."
한국 역사와 철학을 많이 공부했다고 귀띔하는 이들의 표정에선 뿌듯한 만족감을 읽을 수 있었다.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고 늦은 밤 막걸리와 두부김치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고 했다.
자신들의 음악은 서울의 부산한 거리를 걸으며 들을 때 제일 흥겹게 느껴진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모두 한국 생활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대학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자 둘은 '대학은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브라이언씨는 매학기 첫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게 있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절대로 써서는 안 될 호칭을 칠판에 적어 줍니다.
서(Sir.),교수님,선생님 등으로 부르면 아예 벌점을 매기겠다고 하죠.언어 수업의 특성상 교수와 학생 사이에 친밀감이 없으면 제대로 영어를 쓸 수 없거든요.
제 목표는 여기가 교실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잊게 만드는 겁니다."
록 음악의 자유분방함은 대학에서 이들이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대는 모든 문화와 언어가 섞이고 조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 역시 격식 없는 토론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갈수록 중시하고 있죠." 로버트씨의 고민은 학생들이 갈수록 유약해지고 있다는 것."요즘 대학생은 딸기 같아요.
부모의 과보호 때문인지 쉽게 상처받죠.사회에도 무관심한 것 같아 수업 시간에 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강의하랴 공연하랴 바쁜 이들의 일상은 요즘 더 분주해졌다.
밴드의 두 번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한국어로 쓴 곡도 처음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자신들의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준비해 놨다고 전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비밀이라고 밝힌 형제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록 음악으로 돈을 벌기는 힘들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보다 큽니다.
저희 음악의 고향이자 본무대인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습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서울 홍대 앞 공연장에 외국인 형제가 들어섰다.
치렁치렁 목에 건 목걸이,헐렁한 청바지,눈썹까지 두건을 눌러쓴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 손에 든 검은 서류 가방이 옷차림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미국 뉴저지 출신의 로버트 오라스(33)와 브라이언 오라스(32).이들은 데뷔 4년째인 록밴드 '코스모3(Kozmo3)'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맡고 있다.
이들의 본직은 대학 교수다.
형인 로버트 오라스는 세종대에서,동생인 브라이언 오라스는 한성대에서 영문과 전임강사로 영어회화와 작문을 강의하고 있다.
강단에도 이런 패션으로 나서느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로버트씨가 쾌활하게 웃어넘긴다.
"물론 강단에 설 때는 목걸이나 두건을 절대로 착용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거슬리기만 하니까요.
홍대 앞에서 공연하는 주말마다 대변신을 하는 셈이죠."
로버트씨는 올해로 한국 생활 10년째다.
미국에서 뉴욕대를 졸업한 후 한국행 비행기에 훌쩍 몸을 실었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살고 싶었죠.아시아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 끌렸습니다." 코넬대학 영문과를 수료한 동생 브라이언씨도 5년 전 한국으로 왔다.
"형이 미국으로 전화할 때마다 한국 생활의 매력을 강조하더군요.
특히 홍대 앞 공연 문화를 자주 자랑하기에 궁금증이 생겼죠."
어릴 적부터 음악에 심취해 있던 형제가 서울에서 밴드로 뭉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코스모3'라는 밴드 이름은 만물과 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따 왔다.
"한국인(김진옥,황오철)과 미국인 각각 두 명으로 이뤄진 우리 밴드는 두 가지 문화의 완벽한 조합입니다.
미국 록 음악의 전통과 한국의 최신 흐름을 섞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죠." 이들은 연주하는 모든 곡을 직접 작곡할 뿐 아니라 음반 표지 디자인부터 밴드 홈페이지(www.Kozmo3.com) 관리까지 하고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밴드 정보를 문서로 정리해 올 만큼 열정도 대단했다.
두 사람은 거칠지만 흥겨운 자신들의 음악이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첫 음반의 제목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얻었다.
이들은 노래를 통해 성 매매 반대와 같은 사회적인 주장도 펼치고 있다.
로버트씨는 최근 '사도세자의 발라드'란 곡을 내놨다.
"얼마 전 동양철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뒤주 안에서 아흐레 만에 죽은 사도 세자의 이야기가 특히 가슴에 스며들었죠.슬픈 내용이지만 독특한 해석을 덧붙여 단조가 아닌 장조로 작곡해 봤습니다."
한국 역사와 철학을 많이 공부했다고 귀띔하는 이들의 표정에선 뿌듯한 만족감을 읽을 수 있었다.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고 늦은 밤 막걸리와 두부김치 생각에 입맛을 다신다고 했다.
자신들의 음악은 서울의 부산한 거리를 걸으며 들을 때 제일 흥겹게 느껴진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모두 한국 생활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대학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자 둘은 '대학은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브라이언씨는 매학기 첫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게 있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절대로 써서는 안 될 호칭을 칠판에 적어 줍니다.
서(Sir.),교수님,선생님 등으로 부르면 아예 벌점을 매기겠다고 하죠.언어 수업의 특성상 교수와 학생 사이에 친밀감이 없으면 제대로 영어를 쓸 수 없거든요.
제 목표는 여기가 교실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잊게 만드는 겁니다."
록 음악의 자유분방함은 대학에서 이들이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대는 모든 문화와 언어가 섞이고 조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 역시 격식 없는 토론과 개방적인 분위기를 갈수록 중시하고 있죠." 로버트씨의 고민은 학생들이 갈수록 유약해지고 있다는 것."요즘 대학생은 딸기 같아요.
부모의 과보호 때문인지 쉽게 상처받죠.사회에도 무관심한 것 같아 수업 시간에 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강의하랴 공연하랴 바쁜 이들의 일상은 요즘 더 분주해졌다.
밴드의 두 번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한국어로 쓴 곡도 처음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자신들의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준비해 놨다고 전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비밀이라고 밝힌 형제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록 음악으로 돈을 벌기는 힘들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보다 큽니다.
저희 음악의 고향이자 본무대인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습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