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暢賢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2002년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중 한 명은 미국 FBI의 콜린 로울리 요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지구특공대' 정도에 해당하는 TV시리즈를 보던 어린 로울리는 이 시리즈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방송국에 편지를 쓴다.

내용인즉슨 어떻게 하면 지구를 지키는 특공대에 가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얼마 후 방송국에서 답장이 왔다.

지구특공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대신 FBI라는 비슷한 조직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보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어린 로울리는 FBI요원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대학 졸업 후 드디어 꿈에 그리던 FBI에 입사를 한다.

이런 그녀가 내부고발자가 된 것은 그녀가 무사위라는 아랍계 유학생에 대한 수사를 본부에 의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급진적인 전력을 가진 이 청년이 미네소타에 있는 비행기 조종 훈련학교에 등록을 하자 로울리 요원은 이 청년에 대한 수사를 본부에 신청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청년은 탈취한 비행기를 조종해 미국 무역센터빌딩으로 돌진한 9ㆍ11테러의 장본인이 되었다.

"수사가 됐더라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과는 달리 FBI국장은 의회에서 사전에 어떠한 징후도 발견한 바 없다는 발언을 한다.

이를 접한 로울리 요원은 국장의 발언이 잘못됐고 자신의 조직이 얼마나 비대해지고 관료화됐는가를 담은 메모를 의회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내부기밀고발자가 됐다.

의회는 발칵 뒤집혔고 그녀는 의회에서 증언까지 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그녀는 20달러 이상의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하게 30달러짜리 식사대금을 자신이 직접 지불하고 24.75달러의 가격표가 찍힌 책을 타임지에서 선물하자 이에 대한 개인수표를 보내온다.

타임지가 로울리 요원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바로 그녀의 의도가 순수했고 다른 의도 없이 조직을 위하는 마음으로 내부고발자가 된 모습에서 중요한 의미를 읽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에 근무했던 전직 법무팀장의 폭로 건이 문제가 돼 많은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그 변호사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조직을 위해서 이런 일을 했다는 시각부터 조직을 배신했다는 시각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그러나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차명계좌의 존재를 미리 알았으면서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전관예우 차원의 급여지급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식으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

조직으로부터 챙길 것 다 챙기고 더 챙길 것이 없어지자 비로소 폭로를 한 것은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나쁘다.

이 때문에 그가 정말 자신이 속했던 조직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했는지 의문시되는 것이다.

또한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사제조직에 폭로를 의뢰한 부분,폭로 이후 다른 시민단체가 나서는 부분도 그렇지만 특히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후 이에 대한 증거를 다음에 제시하겠다고 나선 부분은 의혹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시도가 아닌지 의문스럽다.

증거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제시하면 되지 왜 이런 정치적인 제스처를 쓰는지 알길이 없다.

그리고 변호사로서 취득한 자신의 의뢰인에 관한 정보를 외부에 폭로하는 모습도 웬지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삼성에 대한 문제는 당연히 수사하고 내부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조직들이 개입하고 고발자가 사제들에 의해 영웅 내지는 순교자처럼 취급되는 모습은 어딘지 어색하다.

특히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이런 사건이 불거지는 것도 걱정스럽다.

혹시 소위 사회지도층 내지는 기득권층의 문제점을 부각시킴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의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향후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흥분은 금물이다.

모두 차분하게 수사를 지켜보아야 할 때다.

/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