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못길러낸 기업 위기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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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낙마로 허둥대는 메릴린치ㆍ씨티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4일 "스탠리 오닐 메릴린치 전 CEO에 이어 찰스 프린스 씨티그룹 회장 겸 CEO가 서브프라임 손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도 뉴스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들 CEO가 회사를 떠나는 순간에도 두 회사는 적당한 후임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메릴린치는 지난달 30일 오닐이 사퇴하자 알베르토 크리비오르 이사를 '임시 비집행(non-executive) 회장'으로 선임했다.
CEO는 선임하지 못한 채 회사 운영권도 없는 비집행 회장만 임명한 것.이와 관련,포천은 "메릴린치는 회사를 이끌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메릴린치 이사회는 새 CEO를 물색하기까지 최소 수주에서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발표하고 있어 회사의 지도력 부재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씨티그룹도 이날 프린스 회장 겸 CEO가 사임하자 적당한 후계자 선임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나마 회장직에 전 미국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경영위원회 회장을 임명하고,임시 CEO로 씨티유럽 회장인 윈 비숍 경을 선임한 정도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들 금융기관이 수만 명에 달하는 자사 직원 가운데 적당한 후계자를 준비하고 길러내지 못했다는 것은 비슷한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많은 미국 회사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와 관련,메릴린치의 전 CEO인 댄 튤리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메릴린치)가 외부에서 인재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미국 회사들의 '후계구도 부재'는 최근 수년간 곳곳에서 지적돼 왔다.
나름대로 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유명 대기업들도 CEO가 회사를 그만뒀을 때 후임을 제때 찾지 못해 허둥지둥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한 사례가 많다.
보잉 3M 휴렛팩커드(HP) 포드 크라이슬러 등 쟁쟁한 회사들도 최근 수년간 회사의 CEO 선임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외부 인재를 데려와야만 했다.
그만큼 미국 회사들의 인재 보급 라인이 총체적으로 삐걱대고 있다는 얘기다.
한 컨설턴트는 "GE의 전설적인 리더였던 잭 웰치 전 회장이 후계자군을 치밀하게 양성해 제프리 이멜트를 뽑아 올렸던 사례는 MBA과정 인사관리의 전형적인 케이스 스터디 교재"라며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이 같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충격"이라고 지적했다. 포천은 "만약 어떤 회사가 왜 리더십 개발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그동안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메릴린치와 씨티그룹 사태가 그 같은 의심을 말끔히 씻어줬을 것"이라며 "회사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제대로 육성하는 것은 세계적 기업이라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