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석유.가스 자주개발률(국내 총 소비물량 중 국내 자본으로 생산한 물량의 비중)이 3% 안팎에 그치고 있는 비(非)산유국이면서 소비량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인 소비 대국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서부 텍사스 중질유 기준)를 가시권에 두게 되면서 우리 경제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까닭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비산유국들이 초고유가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에너지 시장에서 '키플레이어(key player)'로 활약할 수 있는 석유메이저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21세기 들어 비산유국에서 산유국으로 변신한 프랑스와 스페인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이들 국가는 초대형 인수·합병과 정부 지원으로 '토탈'과 '렙솔YPF' 같은 글로벌 석유메이저기업을 육성,석유 자주개발률을 61~93%까지 끌어올리며 산유국의 꿈을 이뤘다.

현재 1조배럴로 추정되는 확인유전은 이미 주인이 정해졌지만 미개발 상태에 있는 유전도 확인유전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만 뛰면 나라 경제가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백년대계' 수립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토탈과 렙솔YPF에서 '에너지 메이저 육성법'을 배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 라데팡스에 있는 세계 4대 석유 기업인 토탈 본사.고도제한이 엄격한 파리에서 49층의 마천루를 형성하고 있는 토탈빌딩은 프랑스 자긍심의 상징으로 통한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지난해 토탈은 2272억7400만달러(한화 201조6247억원)를 벌어들였다.

순이익만 178억8700만달러(16조2252억원)에 달한다.

매출 규모를 놓고 보면 프랑스를 넘어 유로경제권(영국 제외)을 통틀어서도 'No. 1'이다.

엑슨모빌(미국),BP(영국),로열더치셸(네덜란드),셰브론텍사코(미국) 등 앵글로 색슨 기업이 주도했던 글로벌 에너지시장에서 토탈의 메이저 진입은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 차원을 넘어 유럽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일대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 '사이즈'가 최대 무기인 자원확보 전장(戰場)에서 토탈 이전에는 앵글로 색슨계 기업들에 맞서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티에리 데스마레(Thierry Desmarest) 토탈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토탈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엑슨모빌 BP 등의 '헤비급'들에 비하면 아직 미들급 정도"라며 "하지만 연평균 5%에 달하는 토탈의 성장률이 '헤비급'들을 압도하고 있는 만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가톤급 M&A로 새 메이저 출현

프랑스 양대 석유기업인 토탈과 엘프(ELF)는 1999년 9월13일 합병을 공식 선언했다.

이 인수·합병(M&A) 과정은 프랑스 최대 경제내전(內戰)으로,유럽의 최대 빅딜로 기록됐다.

당시 통합회사의 고용자만 13만2000여명.토탈은 단숨에 세계 5대 석유메이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토탈이 엘프 주식의 공개매수를 전격 발표하면서 촉발된 양측의 M&A 전쟁은 석 달 남짓한 기간에 토탈의 승리로 끝났지만,M&A에 대한 명분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10여년의 물밑작업이 필요했다.

1990년대 들어 토탈-엘프 간 M&A는 끊임없이 논의됐다.

글로벌 에너지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사이즈=경쟁력'이란 등식이 성립했기 때문.그러나 토탈-엘프 간 M&A가 실제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양사의 기업문화나 조직생리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8년 말 영국의 BP가 미국 기업 아모코를 합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듬해인 1999년 토탈은 벨기에 최대 석유기업인 페트로피나사를 전격 인수,구체적인 액션플랜에 착수했다.

특히 페트로피나 인수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엘프에 대한 공개매수를 발표,주도권을 쥐었다.


◆정부와 기업의 코아비타시옹(?)

토탈과 엘프 등 석유기업의 성장 배경에는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CFP(토탈 전신)는 1924년 정부출자로 설립됐고,이후 토탈과 엘프가 1990년대 순차적으로 민영화될 때까지 정부는 출자 보조금 등 자금 지원과 함께 석유개발권 취득을 위해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라크와 아프리카 진출에 이어 1970년대 북해의 대규모 유전개발로 토탈과 엘프 등이 준(準)메이저급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와 기업의 코아비타시옹(동거)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1951년 탄화수소보조금제도에 이어 성공불융자제도(탐사 실패시 융자금을 대부분 감면해 주고 성공시에는 원리금 및 순수익 일부만 받는 방식)를 도입,유전개발 등에서 기업의 리스크를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토탈이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메이저기업들에 맞서 자원확보 전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3박자가 맞는 사업 포트폴리오

토탈은 벨기에 페트로피나 및 엘프의 합병으로 석유메이저기업 중 가장 완벽한 사업부문별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페트로피나 합병으로 하류부문(정유사업)과 화학부문을 보강했고,석유개발.탐사에 강점을 가진 엘프의 흡수로 토탈은 '날개'를 달았다.

토탈은 현재 세계 42개국에서 자원탐사 및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이 가운데 30개국에서 석유와 가스를 상업생산하고 있다.

2006년 말 기준으로 하루 원유생산량은 248만배럴.지난해 기준으로 토탈이 확보한 유전량은 111억배럴로 추정된다.

한국의 연간 원유 수입량(8억배럴)을 감안할 때 앞으로 14년을 쓸 수 있는 양이다.

정유사업도 유로경제권을 통틀어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루 정제능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0만배럴.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에 운영하는 소매점수만 1만7000여개에 달한다.

화학부문에서는 유럽지역 매출이 총 57%를 차지하는 가운데 북미(24%)와 아시아.남아프리카(19%) 등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있다.

토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계 3대 석유메이저기업으로의 도약을 공식 선언했다.

토탈은 이를 위해 매년 평균 152억달러를 자원개발.탐사(E&P)에 쏟아붓고 있다.

이를 통해 서아프리카와 카스피해 등으로 석유 탐사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경제성이 떨어져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는 심해유전과 오일샌드 등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파리=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