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같은 톱-다운(Top-Down) 방식의 경영 시스템과 강성 노조가 변하지 않으면 10년 후 현대자동차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 낭비 제거 운동의 대가(大家)인 제임스 워맥 린(Lean) 경영연구소 소장은 현대차가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경영 시스템과 노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기업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을 키워야 하며,경영진이 '집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맥 소장은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도요타의 생산 방식을 오랜 기간 연구한 끝에 1990년 '린 경영' 이론을 정립했다.

최소한의 자원을 투입해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경영기법이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한 '린 경영 특별 초청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워맥 소장을 2일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도요타만 30여년간 연구해온 자동차 전문가로 알고 있다.

현대차에 대해 평가한다면.


"현대차는 도요타를 위협할 만한 경쟁자로 성장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현대차가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놀라운 발전이다.

특히 품질 면에서의 성장이 인상적이다.

출시한 지 3개월 이내의 신차 품질 결함률에서 현대차는 도요타와 맞먹는다.

내구성 품질도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톱-다운 방식의 경영 시스템과 강성 노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을 보장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198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현대차를 둘러봤다.

당시 현대차는 과거 포드사와 흡사한 톱-다운 방식의 경영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지속적인 원화 강세와 글로벌 경쟁 심화 등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는 과거의 경영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또 대립적인 노사 관계로는 지속적인 성공을 이뤄낼 수 없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노조의 협력이 절실하다."

-'린 경영'이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을 수반할 수도 있는데 노조가 쉽게 협조하겠는가.

"어떤 기업이든 낭비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조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살을 빼고 조직을 효율화하는 것이 일자리 유지 및 임금 상승 면에서 근로자들에게 보다 유리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1982년 미국 GM(제너럴 모터스)은 생산성이 극히 낮은 캘리포니아 공장을 폐쇄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공장은 군대식 경영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노조는 회사에 비협조적이었다.

5000명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일부는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GM은 도요타로부터 공동 생산 제안을 받고,닫았던 공장을 재가동하면서 도요타에 경영을 맡겼다.

도요타는 강도 높은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을 핵심으로 한 도요타 시스템을 근로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장을 가동할 수 없다고 근로자들에게 통보했다.

도요타 측 요구를 근로자들이 받아들이면서 공장의 생산성은 과거에 비해 두 배로 높아졌고 제품 결함률은 크게 줄었다.

1년 만에 GM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린 경영'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태도다.

경영자들이 앉아서 명령만 내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나가서 확인하고 발로 뛰어야 한다.

생산 현장이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을 가서 보고(Go and See),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 방법을 찾기 위해 물어야(Ask Why)한다.

그리고 근로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해야(Show your respect) 한다."

-'린 경영'의 성패 여부는 경영자의 의식 변화에 달려 있다는 말인가.

"최근 기업 경영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가 도요타처럼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해당 기업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나 근로자들과의 의사소통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해당 경영진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바쁜 일정 등을 내세워 현장 방문을 거절한다.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얘기는 이렇다.

'사장님께서는 현장에 대한 바탕 지식 없이 회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이다.

그만큼 현장은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에 해주고 싶은 조언은.

"한국 기업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모험심을 키워야 한다.

또 경영진이 '내가 회사의 주인이다.

무엇이 잘못되고 잘됐는지 내가 모두 안다'라고 자만심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이렇게 해서는 직원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고 변화를 주도할 수도 없다."

-얼핏보면 '린 경영'이 제조업체에만 해당하는 경영기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첨단 정보기술(IT)산업이 발달한 한국 현실에 맞도록 린 경영을 적용할 수는 없겠는가.


"린 경영을 흔히 '공장'과 연계시키는데 그렇지 않다.

린 경영의 핵심은 목표(Purpose) 과정(Process) 사람(People)의 3P로 요약할 수 있다.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한 뒤 문제점을 발견하고,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직원들로 하여금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IT기업에도 제조업과 같이 린 경영을 적용할 수 있다."

-업종에 상관없이 린 경영을 통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린 경영 방식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 앞서 대만에 들렀다.

현지에서 유명한 대형 레스토랑 체인의 대표가 '우리 레스토랑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곳의 문제는 120%에 달하는 높은 이직률이었는데 레스토랑 대표는 정작 요리나 서비스 등에서 문제점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직원들의 잦은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현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보거나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진단을 내려줬다."

-얼마나 자주 기업을 방문하나.

"연간 50회가량 기업을 찾는다.

일주일에 1~2개 회사를 둘러보는 셈이다.

한국 방문 후에는 보잉사를 둘러보고 그동안 실시해온 린 경영의 성과를 살펴볼 계획이다.

보잉은 비행기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목표다.

이번에 보잉은 새로운 기체 및 구매 시스템 설계가 끝났다며 방문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글=김현예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