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해 상품 양허(개방)안을 수정하기로 한 것은 지금의 양허 수준으로는 더 이상 협상을 끌고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우리 측은 지난 3차 협상에 앞서 이미 한 차례 상품 양허안을 수정한 만큼 다시 수정할 경우 '일방적인 양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재수정 가능성을 내비친 데는 양측 간 상품 양허안 수준 차이가 커 협상 진전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론이 작용했다.

실제로 양측 양허안의 상품관세 조기 철폐 비율(즉시+3년 이내 철폐)은 EU 측이 80%에 이르는 반면,우리 측은 68%에 불과하다.

◆상품 양허안 돌파구 찾나

19일까지 계속된 4차 협상의 상품 양허 분야에서는 협상 기간 내내 기술적 협의가 이뤄졌다.

한.미 FTA 수준과 비교할 때 서로 덜 개방하겠다고 한 2100여개 품목을 25개로 분류해 그 이유를 설명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김한수 우리 측 수석대표는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게 목적이었다"면서도 "EU가 한.미 FTA와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게 성과"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수석대표는 "우리는 순진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7년 내 모든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으나 한국 측의 안은 과감하지 못하고 한.미 FTA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5차 협상에서는 우리 측이 EU의 수준에 근접하는 안을 마련,본격적인 개별 품목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차 비관세 장벽도 문제

상품 양허안에서 양측이 수정안을 만든다고 해도 비관세 장벽 철폐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이번 협상에서도 자동차 기술표준은 뜨거운 쟁점이었다.

EU 측은 한국의 자동차 기술표준을 인정하는 대신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 ECE)의 자동차 기술표준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자동차의 한국 시장 진입을 허용해 달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지만 우리 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베르세로 대표는 "자동차의 경우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 모두 FTA 타결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특히 (한국 측의) 자동차 비관세 장벽 철폐 없이는 한.EU FTA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대표는 "아직까지 양측이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해법 도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U 측이 자동차 비관세 장벽 문제를 관세 철폐 논의와 사실상 연계하고 있는 만큼 다음 달 5차 협상에서도 양측 모두 7년으로 제시한 자동차 관세 철폐 시기 단축 문제는 논의되기 어려워 보인다.

상품 양허,비관세 장벽 등 핵심 쟁점에서 협상이 한발도 나가지 못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일부 진전도 있었다.

비관세 장벽 중 의견 대립이 예상됐던 전기.전자제품의 자기 적합성 선언,서비스 분야에서 대졸 신입사원 연수 문제와 전자상거래 금융거래 통신서비스 등에서는 의견을 접근하거나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양측은 밝혔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