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는 미국 워싱턴의 한 파티장.나비 넥타이와 검정 슈트,한들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 속에 한인 남녀가 등장한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파티장 사람들을 둘러보며 의견을 나누던 두 사람.미 해군의 군납을 담당하는 제퍼드 하원의원을 발견하자 여자가 접근한다.

여자는 "오늘 밤 안으로 그를 유혹해 납품권을 따내겠다"는 말을 남긴다.

모 방송국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로비스트'의 한 장면이다.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의 화려하면서도 냉혹한 삶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어 방영 첫주에 시청률 15%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로비스트들의 인기는 높은데 현실 속의 우리나라 로비스트들도 그럴까.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현재까지 한국에선 로비스트가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비스트 양성화를 두고 많은 논의가 진행돼 왔지만 몇몇 의원들이 법안만 발의했을 뿐 입법화는 깜깜무소식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로비스트 관련 법안은 대통합민주신당 이은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로비 활동 공개 및 로비스트 등록법',민주당 이승희 의원의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 공개법',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외국대리인 로비활동 공개법' 등 3건.법무부가 준비 중인 정부 입법안을 만들 때 같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오리무중이다.

연말 예산 관련 법안들에 우선순위가 밀리면 총선과 함께 폐기될 것이라는 게 로비스트 법안 관련자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법안 입법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단체와 각종 이익단체의 반대 때문.대한변협 등은 "로비활동 법제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관예우,연고를 이용한 로비,금품 및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한 로비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며 변호사 이외의 로비스트 양성화 입법 자체를 반대한다.

여기에다 로비스트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나쁘다.

대부분은 로비스트를 뇌물을 주고 이익집단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브로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로비스트 양성화 주장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로비스트 법안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로비가 연례행사처럼 터져나오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민주당 이승희 의원실의 허종미 보좌관은 "'로비스트법'은 국민의 국가기관에 대한 청원권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로비스트법이 시행되면 특정인이 암암리에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걸러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작용을 낳고 있는 로비스트의 활동이 로비스트법에 따라 공개되면 오히려 투명한 로비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만일 로비스트법을 어기고 로비할 경우 더 엄격하게 처벌하고 당사자를 도태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는 주장이다.

입법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우려를 담아낸다면 로비스트법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