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카페키 미국 유타대 교수(70)의 인생 역전극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나치 독일의 광기 속에서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거리를 전전하던 카페키 교수가 온갖 역경을 딛고 노벨상까지 받게 된 '성공 신화'는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그의 인생 역정을 자세히 소개,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카페키 교수는 1937년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공군이었던 아버지와 시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직후 사망해 카페키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그가 세 살 되던 해 어머니마저 반나치·반파시즘 선전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끌려가 그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홀로 남은 카페키는 거리로 내쫓겼다.

이때부터 그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노점상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뒷골목을 헤매는 부랑아 생활을 했다.

고아원에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남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고달픈 시절이었다.

어린 카페키는 배고픔과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빵 부스러기로 연명하던 카페키에게 다시 희망이 찾아온 것은 그의 아홉 번째 생일날이었다.

1945년 나치로부터 풀려난 어머니가 수소문 끝에 카페키를 찾아낸 것이다.

어머니와 눈물의 재회를 한 날 카페키는 6년 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이들 모자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펜실베이니아주의 외삼촌을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으로 건너온 카페키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찰흙 공작을 하게 해 주는 교사의 배려로 학교에서 배움의 길을 터득해 나갔다.

그는 남다른 끈기와 인내를 갖고 학업에 정진,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1967년 하버드대학에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딴 카페키는 '유전자 적중(gene targetting·세포핵에 DNA를 주사해 특정 유전자의 변형을 일으키는 기술)'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

물론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그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던 미 국립보건원(NIH)이 "쓸모없는 연구"라면서 퇴짜를 놓고 자금 지원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그러나 강인한 의지력을 가진 그는 연구를 밀어붙였고 결국 포유동물의 배아줄기세포와 DNA 재조합에 관한 잇단 발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힘들고 괴로웠던 어린 시절은 카페키 교수가 온갖 어려움을 겪고 세계적인 연구를 성공시킨 원동력이 됐다.

그런 그를 보며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불가능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

최인한 기자/연합뉴스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