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아니구이 vs 게사니구이,토란국 vs 대동강숭어국,영덕게살 죽순채 vs 꽃게흰즙구이….

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정치·경제 분야 등의 의제를 둘러싼 양측 간 신경전 못지않게 치열한 물밑경쟁이 벌어진 분야가 있었다.

양쪽 정상이 번갈아 베푼 만찬이 그것.메뉴 구성과 서빙을 놓고 남북 조리업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

정상회담이 시작된 지난 2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환영만찬을 베풀자 우리 측은 3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답례만찬을 베풀었다.

정부로부터 답례 만찬 준비와 진행을 요청받은 롯데호텔은 성기창 식음팀 지배인(45),정문환 한식 조리장(44),하혜선 플로리스트(42),송종구 연회판촉 과장(45)과 실무자 두 명 등 여섯 명을 파견해 '남북 요리경쟁'의 최일선을 맡겼다.
남북정상회담 만찬 준비 '롯데호텔 드림팀'의 뒷얘기…"主卓은 여깁네다"
이들이 기억하는 북측 만찬 메뉴는 수육과 비슷한 요리인 게사니구이,배와 밤을 채로 썰어 만든 배밤채,오곡찰떡,쌀과자의 일종인 과줄,잉어배살찜,갈비찜과 비슷한 소갈비곰,꽃게흰즙구이,송이버섯완자볶음,대동강숭어국,흰밥과 김치,수박,성천약밤구이,찔광이차 등이었다.

북한 측 만찬이 담백한 맛으로 참석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자 성 지배인 등은 더욱 긴장됐다.

"북한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 측은 김정일 위원장이 TV 드라마 '대장금'의 팬이라는 점에 착안,'대장금이 조리한 팔도 음식 요리'를 '필살기'로 준비했다.

테이블과 의자만 빌렸을 뿐 식재료에서부터 수저 냅킨 꽃장식 등을 2.5 t 트럭 세 대에 싣고 가져갈 만큼 공을 들였다.

영덕게살 죽순채와 봉편메밀쌈,흑임자죽,완도전복과 단호박찜,제주흑돼지 맥적과 누름적,고창 풍천 장어구이,횡성 평창 너비아니구이와 자연송이,전주비빔밥과 토란국,호박과편 삼색 매작과와 계절과일,안동 가을 감국차 순으로 내놓은 '대장금 요리'는 북측 참석자들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기본 찬으로는 배추김치,나박김치,새우잣즙무침,영광굴비,송이사태 장조림,매실장아찌,남해멸치볶음을 내고 11가지 팔도전통술과 모둠안주인 건구절판을 곁들였다.

"참석자들이 특히 좋아한 것은 건구절판이었습니다.

솔잎에 잣을 끼워 다섯 개씩을 하나로 묶은 것이었죠."(정 조리장)

롯데호텔이 청와대 의전팀으로부터 답례 만찬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지난 8월 중순."9월27일 사전 답사를 가기 직전까지 식재료 마련 및 검역,테이블 세팅·인테리어와 북한 '웨이터'(북한 측은 만찬 서빙 요원 70명,식당 보조 25명을 지원해줬다) 교육안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보냈습니다.

혹시나 얘기가 샐까봐 아내한테도 한일자로 입을 함구한 채 일을 했어요."(성 지배인)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싶었지만 사전 답사에서 북한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난 뒤 성 지배인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쳤다.

"'주탁은 여깁네다'라고 하는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한참 뒤에야 헤드 테이블을 뜻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북한 직원들을 한국 호텔의 웨이터로 변신시키는 일도 쉽지 않았지요."

음식과 관련한 용어도 다른 게 한둘이 아니었다.

"테이블을 셀 때 한 탁,두 탁 한다든지 접시 치우기는 접시 뽑기,참기름 드림이란 표현은 참기름 봉사라고 하는 식이에요." 하 플로리스트는 직업 자체를 이해시키는 데만도 어려움을 겪었다.

"나중엔 그냥 원예사라고 했더니 알아듣더군요."

검역은 걱정과 달리 말썽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트럭 안을 훑어본 다음 만찬 장소인 인민문화궁전의 직원들만이 열 수 있도록 봉인을 한 게 전부였습니다." 성 지배인은 "일이 워낙 바빠 북한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전혀 없어 아쉬웠다"며 "몇 차례 더 만나 보면 정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