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지출 증가율을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재정지출을 늘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일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이 같은 주장은 국내 경제학계에서 호응을 받고 있어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기대된다.

최광 외국어대 교수(경제학과)는 6일,7일 이틀 간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외환위기 이후 10년 한국재정의 평가와 과제'라는 주제로 열리는 '한국재정학회 2007년 추계 정기학술대회'에 앞서 공개한 주제 발표문을 통해 "참여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선심성 사업에 무분별하게 재정 지출을 늘려 재정의 지속성을 해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재정규율 왜 제안됐나

최 교수는 "재정지출과 재정적자의 동시 확대는 나라살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총량적 재정규율제도'의 입법화를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의 배경으로 2002년 말 133조6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가 올해 말 302조원으로,참여정부 5년 만에 국가채무가 두 배 이상 증가한 점을 들었다.

최 교수는 "공적자금 상환 등에 채무가 상당수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더 낸 빚도 많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재정 규율방식으로 △재정지출을 직접 제한하는 방법 △재정적자 규모에 상한선을 두는 방법 △국가채무를 GDP의 일정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재정지출 규율은 세출 증가율을 GDP성장률 이내로 한다든가,특정 세출 항목에 대한 상한선을 설정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정건전성 측면이나 경기안정성 측면,행정의 투명성 측면에서 세출규율이 효과가 좋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균형예산 원칙과 세계잉여금 사용에 관한 간단한 원칙이 있을 뿐 재정에 관한 규율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자를 끌어들여 임대형민자사업(BTL) 형태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의 규모도 철저히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TL사업의 경우 당장은 재정부담이 줄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 부담이 재정사업보다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외국의 사례는

선진국들의 경우 총량적 재정 규율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단년도 수지균형'에서 세계대전 이후의 '경기순환 고려 수지균형',그리고 최근 입법 형태의 '강제적 총량적 재정규율' 등 3단계로 변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마스터리히터 조약(제104조)을 통해 회원국들이 GDP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정부부채 비율을 60% 이내로 묶도록 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각종 제재를 가하는 과도적자 규제(excessive deficit procedure)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1998년 재정안정법(Code for Fiscal Stability)을 제정,자본수지 적자를 메울 목적으로만 정부차입을 허용하는 '황금규칙(Golden Rule)'과 공공부문 채무를 GDP대비 40% 이내로 유지토록 하는 '지속가능 투자규칙'을 확립했다.

◆도입 가능성은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과)는 "참여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며 부채를 많이 늘렸지만 국회를 비롯해 그 누구도 견제하지 못했다"며 "총량적 재정 규율의 필요성이 있다"고 공감했다. 나 교수는 그러나 "단년도로 한도를 두면 지나치게 경직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5년 단위로 목표치를 두고 정부가 탄력적으로 이를 맞춰 나갈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쪽 반응은 시큰둥하다. 배국환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은 "재정적자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심각한 상황이면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 상황에선 그런 경직적인 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도입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피력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