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깨질라." 지난주 베이징 6자회담에서 이 말은 아랍 신화에 나오는 마법의 주문 '아부라카다부라(열려라 참깨…)'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북한은 회담 내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언제 빠지는지 그 시기를 합의문에 넣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에서 따로 만나 시기를 약속한 게 있었으나 국내 반대 여론이 심해 이를 공약해줄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회담이 공전하다 깨졌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중재자로 나선 한국 대표단이 북한의 양보를 얻어낸 논리는 "합의가 거의 다 됐는데 판을 깰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6개국은 판을 깨지 않고 9월30일까지 합의문을 반드시 내겠다는 공통의 목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

10월1일부터 국경절 장기 연휴에 들어간 중국부터 2일부터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남북한,미국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회담을 진전시켜야 했던 북한과 미국 등 이유는 각기 다양했다.

그러다보니 참가국들은 싸움이 될 만한 소재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북한의 핵 증산을 봉쇄하는 게 목표였는데 1년 동안만 보장받는 데 그쳤다.

'불능화'라는 말로 포장은 됐으나 사실상 가동 중단에 불과하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연말까지 전부 밝혀내는 게 목표였으나 공개가 보장된 것은 플루토늄 정도다.

농축 우라늄은 북한이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하는 수준에서 봉합됐고,기폭 장치 등은 북한이 핵폐기 단계에 신고하겠다고 해 받아줬다.

미국은 2002년 북한이 핵무기용 농축 우라늄을 가졌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지난해 핵실험까지 하도록 방치하더니 지금은 "알고보니 무기용이 아니다"라며 시치미를 뗄 조짐이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연내 불능화'라는 큰 틀에 합의해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내년 중 핵폐기가 제대로 안 되면 이번 합의는 정치적 봉합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기한 내 합의문을 반드시 낸다는 목표에 치중하다보니 납기는 맞췄으되 품질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담보하기 위해 숱한 역경을 헤쳐왔던 6자회담이다.

이제 정치쇼의 조연이 아닌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