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일찌감치 경선을 통해 확정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기필코 정권교체를 실현시키고야 말겠다며 기염을 토하는데,이른바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선은 이래저래 무참하리만치 저조한 투표율로 허덕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읽어 보면,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념보다는 실용을,평화보다는 경제를,그리고 대결보다는 화합을 선호하는 것 같다.

특히 현 정권이 가장 잘못한 것은 경제라고 보고 있고,그것도 양극화나 빈부격차의 해소보다는 경기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향상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다소 흠이 있더라도,모름지기 흠 없는 사람은 없으니,경제만 잘 살리면 되지 않느냐는 실용주의는 국민들 눈에 말만 앞세운 것으로 비쳐진 현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문책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정권교체는 필연적일까.

하루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노릇이지만,그렇다고 시시각각 나오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범여권은 선거 막판 후보단일화 같은 극적 반전(反轉)과 야당의 적전분열로 기사회생을 노리겠지만 이미 약발은 떨어졌고,두 달여 남은 선거일까지 쏜살같은 시간을 붙들어 맬 수는 없을 것이다.

한때 박정희 정권 시절 영영 정권교체의 가망이 없을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전직 대통령을 다섯 명씩이나 낳을 정도로 꼬박꼬박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 정당 또는 동일한 정치세력 안에서 정권이 넘어가는 '수직적 정권교체'가 아니라 여에서 야로의 교체,즉 '수평적 정권교체'만이 진정한 정권교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단임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교체돼 온 것을 정권교체가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정권교체라 하면 결국 '수평적 정권교체'요,그런 의미의 정권교체는 박정희 정권 이후 실질적으로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선지 정권교체가 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왠지 불안해진다. 아직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두 번째,반대방향으로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임박한 것 같은 상황은 대안(代案)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조차 어딘지 낯설고 긴장을 자아낸다.권토중래(捲土重來) 야당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념성향이 다르니 한번 크게 요동 치지 않을까. 전임 정권이 만든 걸 뜯어 고치느라 난리가 나진 않을까.어떻든 일자리가 늘고 살림살이도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가 크기도 하겠지만,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가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도 없지 않다.

새 주군을 옹위하며 호가호위할 군상들이 벌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조차 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엄청난 변화가 생길까. 정부를 이끄는 사람이 바뀌고 정책이 달라질 테니 어찌 큰 변화가 없을손가.

필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리더십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결국 우리의 역량과 객관적 여건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크게 달라질 건 없고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경고도 일리가 있다.

갑자기 지옥과 천당이 뒤바뀌진 않을 테고,한국호(號)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도 없을 것이다.

민심이 변하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민심은 단순하고 그래서 정직하다.

정치는 환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족할 수 없기에,사람들은 다시 실망과 역정을 토해내기 시작할 것이다.

정작 그때야말로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가 불거질지도 모른다.

정치란 이렇듯 주기적으로 불만의 계절이 반복되는 진부한 과정임을 깨닫는 순간,우리는 구미(歐美) 선진국들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밟아 온 정권교체의 학습과정을 마치게 된다.

오랜 정치적 암흑기를 겪은 탓에 정권교체가 마치 목숨을 건 투쟁 목표처럼 인식됐다.

그러나 유권자들이여,이젠 휩쓸리지 말자.냉정하게 선택하자.정권교체만이 살 길이라며 정권탈환을 외치는 구호에도,정권이 바뀌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정권사수를 외치는 고함에도 넘어가지 말자.냉철하게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누구에게 맡길지 낱낱이 뜯어보고 결정해야 후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