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문화街] '의자는 잘못 없다' 그럼 잘못은 누가 한거지?
작년 여름 서울 대학로에 눈길을 끄는 창작 연극 한편이 개막됐다.

제목은 '의자는 잘못 없다'로 소유욕에 몸부림치는 네 명의 인간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코믹 상황극이었다.

무대 중앙에는 마치 취조를 받는 대상처럼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기본 줄거리는 그 의자를 갖고 싶어 안달이 난 한 남자의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꼬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개막 공연이 끝난 후,관객들로부터 전혀 다른 이유에서 '의자는 잘못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스위니 토드'는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 불특정 다수에게 면도칼을 휘둘러 '일상적 살인'을 하는 이발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사회적인 약자가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한다는 설정에서 블랙 코미디에 속한다.

특히 손님들을 이발소 의자에 앉히고 면도칼로 목을 난자한 후 그 의자를 접어 시체를 바닥의 비밀통로에 떨어뜨리는 장면에서는 공포를 느끼기 보다 웃음보가 터진다.

그 엽기적인 발랄함 때문이다.

하지만 개막 공연 중에 그 의자가 한번 접어진 채 다시 원상 복구되지 않는 초유의 공연 사고가 발생했다.

이발사 역의 배우는 안간힘을 써서 의자를 돌려놓으려 했고,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 뱀프(vamp:연주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구간)를 계속 돌렸다.

아마도 백스테이지의 무대감독은 자신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

결국 의자가 접혀진 채로 다음 손님을 맞았고 그 손님은 접힌 의자에 앉아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의자의 반란'은 공연 내내 지속되었고 관객은 배우보다 의자에 집중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의자는 공연 후 즉시 다른 의자로 교체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혹시 의자에 잘못이 있나?

의자 조작법을 숙지하지 못한 배우의 잘못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의자를 설계한 책임자가 작품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개연성이 존재한다.

의자가 네 단계를 걸쳐야만 접이가 조작되는 복잡한 방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 창작의 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소품 큐(cue)와 대사,노래가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면서 정교한 연출로 초연된 명작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소품인 의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문제의 장면에서는 네 번이 아니라 두 번의 조작만으로 의자가 접혀 시체를 처리해야 매끄러웠다.

이를 위해 해외 공연에서는 하나같이 용수철을 이용해 그 조작 단계를 줄였다.

하지만 한국 초연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의자의 외관은 훌륭했으나 외관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해프닝처럼 흘려도 될 만큼 지난 이야기가 되었고 오히려 보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났지만 결론적으로 '의자는 잘못 없었다.' 잘못은 사람이 했다.

< 조용신 뮤지컬칼럼니스트·설앤컴퍼니제작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