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에 극장가가 가장 붐비는 시기는 추석 및 설 연휴,여름방학,연말 등이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한국영화의 대목이라 일컬어지는 시기는 추석과 설 연휴다.

충무로는 이 시기에 맞춰 흥행이 될 만한 영화들을 대거 개봉한다.

올해는 '두 얼굴의 여친'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즐거운 인생' '상사부일체' '사랑' 등 다섯 편의 한국영화가 경쟁하고 있다.

다섯 편 모두 각각의 흥행 코드를 갖고 있어 '난형난제'의 형국이다.

이럴 때 영화 마케터들은 자신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강력한 '뭔가'를 원하게 된다.

영화 홍보의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수단은 예고편이다.

관객들은 예고편을 통해 영화와 처음 만나고,예고편의 재미에 따라 볼지 안 볼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영화 마케터들은 예고편에 영화의 에끼스를 모두 담으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예고편을 만들더라도 꼭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건 바로 심의다.

극장용 예고편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TV용 예고편은 방송광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관객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심의라는 것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번에 개봉한 추석 영화들을 보자.'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의 경우 결혼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원정가려던 유해진이 사기를 당해 어머니 금니 해드릴 돈을 다 날리고 산 속에서 자살하려는 코믹한 장면을 담으려 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것 때문에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두 얼굴의 여친'의 TV용 예고편 심의 때는 대사가 문제였다.

정려원의 "척추를 확 접어 버릴라"라는 대사가 있었는데,대중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삐' 소리로 가려졌다.

'사랑'도 대사가 문제였다.

주진모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박시연이 보스의 여자가 돼 나타나자 혼자서 "지랄 같네.사람 인연…"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에서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대사는 포스터 카피로도 썼기 때문에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장면만 살아남고 소리는 빠졌다.

'상사부일체'는 비속어,욕,외래어 등이 영화 전편에 깔려 있어 TV 예고편을 제작하기 힘들었던 경우.'나와바리' '다방 레지' '새끼야' '낫싱 이즈 미션 임파서블' '짱' '패밀리' 등이 심의에 걸린 용어들이다.

추석 영화는 아니지만 10월 초에 개봉하는 황정민·임수정의 멜로 영화 '행복'은 두 사람의 베드 신이 걸렸다.

원래 임수정의 허벅지가 보이는 극장용 예고편을 제작했지만 옷을 푸는 장면으로 대체됐다.

TV용 예고편에는 아예 이 장면 자체가 없어 아쉽기까지 하다.

관객들은 예고편을 편안하게 극장이나 안방에 앉아서 본다.

하지만 불과 15초에서 1분가량인 예고편은 위와 같이 엄격한 심의를 통과해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리고 이 '살아남은 자'들이 영화 흥행 전쟁에서 최첨병 역할을 한다.

관객에게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일으키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바로 예고편이다.

이원 영화칼럼니스트·무비위크 취재팀장 lateho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