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받았는데 결혼식 시간이 월요일 한낮이라고 적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인쇄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사실상 오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심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결혼식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요일이다.

그런데 약 200년 전인 1790년대 영국에서 결혼식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요일은 바로 월요일이었다.

당시 교회의 혼인기록을 보면 전체 결혼식의 무려 40%가 월요일에 이루어졌다.

반면 금요일과 토요일에 결혼식이 가장 적었다.

이런 관습은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데,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에는 '선대제'라는 생산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상인이 농가에게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와 도구를 빌려주고 제품을 만들게 한 다음 며칠 후 그 제품을 회수해가는 방식이다.

이 시절에는 상인이 농가에 맡겼던 일감을 회수하고 다음 번 일의 자재를 보급하는 일이 대개 토요일 저녁에 이루어졌다.

이때 가내수공업자들은 맡은 일을 미루어 두었다가 주로 금,토요일에서야 부랴부랴 해치운 다음 주말에는 음주와 향락으로 지새우곤 했다.

이 여파로 그들은 월요일이 되어도 아직 일을 시작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 월요일은 여전히 실질적인 휴일이었고 결혼식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습은 점차 바뀌어 1910년께가 되면 월요일 결혼식의 비중은 크게 줄고,토요일과 일요일의 비중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100년간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자신의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던 선대제가 사라지고,공장제가 등장하면서 노동시간 통제가 엄격해졌음을 뜻한다.

이처럼 경제제도의 변화는 긴 시간에 걸쳐 인류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다.

서울대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는 양동휴 교수는 '양동휴의 경제사 산책'(일조각)에서 이러한 일상의 역사를 곁들여 가며 500여년에 걸친 근대경제의 역사를 맛깔나게 설명한다.

역사란 어찌 보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얘기처럼 친근하지만 또 달리 보면 백과사전처럼 무겁고 따분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구한말 한양의 뒷골목 풍경이나 포도주의 역사처럼 옛날얘기 같은 역사책은 즐겨 읽으면서도 시대 흐름이나 사회구조의 변화를 기록한 책은 펼쳐보려 하질 않는다.

즉 미시사(微視史)는 유행이지만 거시사(巨視史)는 뒷전이다.

그런데 이 책은 경제의 역사라는 다소 무거운 거시사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미시적 에피소드를 곁들여 제목 그대로 산책하듯이 읽을 수 있다.

가격혁명,산업혁명,대공황,황금기 등에 관한 설명을 연대기적으로 배치해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국가별 경제발전사를 비교함으로써 현재 차이의 연원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거나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식의 통념을 뒤집는 것도 큰 묘미 중 하나다.

책 부피를 조금 키우더라도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그 간결성 덕분에 징검다리 건너듯 자본주의 역사를 경쾌하게 가로지를 수 있다는 미덕이 더 크다.

216쪽,1만2000원.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