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暢賢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삼국지에 보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배들은 쇠사슬로 서로 연결돼 묶여 있었다.

이는 물론 방통의 계략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서로 엮여버린 배들이 문제가 됐다.

한 대가 불이 붙기 시작하자 곧이어 불이 전 함대로 옮겨 붙기 시작했고 결국 함대가 전멸하면서 조조의 패전으로 이어졌다.

배들이 연결돼 있었던 것이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컴퓨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러 대의 컴퓨터 중 한 대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도 각각의 컴퓨터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고 하면 바이러스가 전 컴퓨터로 퍼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들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고 하면 바이러스가 이 네트워크를 타고 모든 컴퓨터로 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네트워크로 연결될 경우 그 순기능은 대단히 크다.

각각의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이메일을 이용해 손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네트워크는 바람이 불어도 튼튼하게 견뎌내도록 해준다.

하지만 가끔은 바이러스가 전달되게 하기도 하고 불이 다른 배로 옮겨 붙어 다 타도록 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최근의 전 세계 금융시장 움직임을 보면 화려하다 못해 현란할 지경이다.

정교한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컴퓨터들처럼 외환시장 정보는 주식시장으로 전달되고 하나의 주식시장 정보는 또 다른 주식시장으로 연결된다.

그뿐인가.

한국시장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유럽시장이 문을 열고 유럽시장이 한참 거래를 하는 시점에서 뉴욕시장이 개장을 한다.

한국시장이 아침에 잠을 깨면 밤새 뉴욕시장에서 나온 재료들이 즉시 개장과 함께 반영되면서 또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나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처럼 얽히고설킨 네트워크가 얼마나 무서운 역할을 하는지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에서 비우량 소비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연체하거나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되는 데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대출자산은 이미 선순위채권과 후순위채권 구조를 통해 유동화돼 다른 투자자에게로 전가(轉嫁)된 상황이었고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주체는 대출 상환 시 우선 순위가 밀리면서 부실대출책임을 가장 먼저 지게 돼 있는 후순위채 보유자였다.

주로 헤지펀드들이었던 이들이 고객 돈만이 아니라 금융회사에서 차입한 돈까지 합쳐 투자를 하는 바람에 금융회사들이 힘들어지면서 신용경색이 발생했다.

또한 힘들어진 헤지펀드들 때문에 문제가 별로 없는 헤지펀드들에까지 고객의 자금상환요구가 이어졌고 이들이 고객에게 돌려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수익을 낸 한국주식을 매도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폭락이 이어졌다.

주택담보대출에서 발생한 불이 후순위채권을 통해 헤지펀드로 옮겨 붙자 다시 헤지펀드의 레버리지를 통해 금융회사와 다른 헤지펀드로 옮겨 붙었고 이는 결국 펀드환매를 통해 국내 주식시장에서까지 불이 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국내 정책감독당국의 행태는 두고두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보력 부족에다 과장된 언급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시장 관계자들을 위축시키는 등 불 끄는 능력이 영 시원찮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사태는 점점 더 심화되는 금융세계화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사과는 맛있어,맛있으면 바나나,바나나는 길어…"로 이어지는 어릴 적 동요처럼 이제 국제금융시장의 네트워크 리스크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계속 심화돼 나갈 것이다.

이제 국내시장도 이에 더 적응하되 특히 감독 정책당국은 이러한 리스크의 위력을 잘 인지하고 시장의 국제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정보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우리 스스로 상황을 주도하기는 어렵다고 볼 때 정책당국자들은 시장의 변동성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이 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일어난 불을 조기에 진화하는 데 힘쓰고 바이러스가 옮겨져도 이를 조기에 퇴치할 수 있도록 평소에 노력을 해야 한다.

소를 일부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은 확실하게 고쳐야 하는 것이다.

/(사)바른금융재정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