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단협을 파업없이 끝내자 울산지역은 잔칫집 분위기다.

음식값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식당은 물론 자칭 현대차 판매 홍보맨이 되겠다는 시민들이 줄을 잇는다.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행울협)는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여 상생의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현대차 파업에 신물이 났던 시민들로선 신바람 나는 일이다.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여러 계파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며 선명성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보니 노동현장에선 최고의 '싸움꾼'으로 군림해왔다.

명분이 있든 없든,조합원들의 지지를 받든 말든,파업의 깃발부터 올렸다.

투쟁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파업을 벌였다.

'파업중독증'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한·미 FTA 체결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차노조가 오히려 한·미 FTA 반대파업을 벌인 아이러니는 바로 그런 이유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현대차 노조에서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차노조 지도부가 파업이란 무기를 집어던지고 대화로 협상을 매듭지었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없이 협상을 끝내기는 1997년이후 꼭 10년 만이다.

그런만큼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킬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노동운동사에 일대 획을 그을 사건이란 평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일부에서 '퍼주기'논란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노조 경영참여의 경우 이미 2003년 합의내용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회사가 노조요구를 무조건 무시만 한다면 과거처럼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노총 내 '행동대장'을 자임하던 현대차노조의 변신은 앞으로 노동현장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다.

그러나 현대차노조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

가장 중요한 게 노조의 과도한 권력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현대차노조는 작업통제권을 쥐고 있다.

생산라인에서는 노조원들이 근무시간 중 회사 측의 통제를 받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신문·책 등을 보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적인 일을 하는 것이 다반사다.

선진국 자동차공장을 방문해보면 세계자동차시장 1위에 오른 도요타는 물론 노조의 파워가 막강한 GM조차도 근무시간에 딴전을 피우는 일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만큼 현대차의 생산현장 분위기가 느슨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배치전환문제도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배치전환이 제대로 안돼 한쪽 공장에선 일감이 넘치고 다른쪽에선 일감이 없어 일손을 놓고 있다면 글로벌시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의 생산성이 도요타의 60% 수준밖에 안 되는 핵심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운동의 본질에 대한 방향을 확실히 정립하는 일도 중요하다.

노동운동을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투쟁과 이념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대차노조가 노동현장의 '싸움꾼'에서 '모범생'으로 변신할 것인지,권력과 특권을 누리며 일자리를 갉아먹는 골치덩어리로 남아 있을 것인지.그 선택은 노조에 달려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