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올봄 한 시중은행의 연수원 강사로 초빙(招聘)됐을 때 경험한 일이다.

연수원에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강의 시작에 앞서 잠시 화장실에 들렀는데,그곳에 강사를 위한 칫솔과 치약이 준비돼 있는 것이 아닌가.

강사를 위한 배려의 세심함에 내심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신문 방송 잡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모교(母校) 졸업생을 시상하는 자리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그 중 한 주인공의 수상 소감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수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각각 문안을 달리한 상패를 준비한 걸 보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디테일의 미학'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소한 것에도 섬세함을 더하는 손길이야말로 미래의 미덕임을 확신합니다."

사소한 것,하찮은 것들에 남다른 눈길을 보내는 습관이 생기고 보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를 위한 공사 중.X월X일까지 진행될 예정.시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공사 현장을 지나칠 때면 선진국 부럽지 않은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영화의 섬세함이 주는 감동 또한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작품성을 공인(公認) 받은 수상작들의 경우,감독이 원하는 빛과 바람, 그리고 소리를 얻기 위해 오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아무도 눈여겨 볼 것 같지 않은 장면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담아낸다 하지 않던가.

덕분에 별 것 아닌 것,주변적인 것 하나 변변히 챙기지 못하는 경우를 만나면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TV 드라마 중에,생활비 벌랴 아비 없이 아이들 키우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하는 여자 주인공의 손을 카메라가 무심코 훑고 지나가는데,잘 다듬어 곱게 기른 손톱 위로 반짝 에나멜 빛이 반사되어 나오는 경우를 볼 때라든가,남자 주인공은 분명 가난에 찌들어 사는 고학생으로 설정돼 있건만 그가 걸치고 나오는 셔츠에 명품 브랜드가 선명히 눈에 띄는 경우를 볼 때면,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시청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해도 내 입장에선 실망감이 고개를 들곤 한다.

디테일이 일상의 무대 전면에 부상(浮上)하게 된 건,'큰 구조(big structure)'에 대한 조망으로부터 '작은 이야기들(small narratives)'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 변화의 트렌드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곧 전쟁을 예로 들어 본다면 과거에는 열강(列强)의 각축장으로서 전쟁의 원인 및 결과를 분석함에 관심이 집중되었다면,현재는 전쟁의 명분이야 어찌됐든 전쟁이 개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흔을 남기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기억해야 할 건 기본적인 것이 충족된 연후에야 비로소 사소한 것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제품으로 치면 기본적 품질을 갖춘 다음에야 고객의 세심한 욕구까지 배려할 수 있는 여지가 가능한 것이요,가족 안에서도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부부간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한데 정작 실망스러운 건 대다수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치 현장에서 만큼은 여전히 '사소한 사안' '하찮은 사건'에 대한 배려가 극히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것,하찮은 것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어찌 중요한 일,필수적인 일을 대과(大過)없이 성취하길 바라겠는지….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난무하는 정치 현장에서도 기본 도의(道義)가 지켜졌을 때만이 국민정서를 헤아릴 수 있는 감동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요,근본 원칙이 고수되었을 때만이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해줄 수 있는 배려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