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哲鎬 < 국민고충처리위원장 ilpa-song@ombudsman.go.kr >

집이란 말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도 없을 것이다.

가정이나 부동산 또는 생활 근거지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재산증식 수단으로서의 투자재가 된 지 오래고,요즘은 거의 도박재에 가까워진 것 같아 보이니 말이다.

나처럼 지방에서 살다가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이 집 때문에 겪는 애환은 남다르다.

지방의 넓은 아파트를 팔아봐야 서울의 작은 아파트 전세도 못 구한다고 아우성들이다.

더구나 지방의 생활 근거지를 그대로 둔 채 빈 손으로 서울에 온 서총연(서울총각연합) 회원들의 사연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내 경우는 형편이 나았다.

줄줄이 서울에 진학한 아이들을 위해 강북에 아주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구해 놓았기 때문이다.

비록 문간방을 차지하고 있던 아들 녀석이 마루로 쫓겨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서울에 와서 내 한 몸 눕힐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택을 신청하려 했었지만,넓은 사택에서 덩그러니 혼자 사는 것보다는 좁은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아내의 충고에 따라 마음을 바꿨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면 각자의 길을 갈 터인데 언제 다시 지금처럼 좁은 공간에서 아옹다옹 어울려 살 시간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희들끼리 잘 살고 있던 아이들 입장에서는 악명 높은 내 코골이 증세와 방이 아닌 마루에서 생활해야하는 불편 등 아버지의 서울생활 때문에 발생한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적어도 나는 좁은 아파트 생활에 불만이 없다.

오히려 서울은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던 부정적 시각을 고쳐 줄 만큼 내 서울 생활은 만족스럽다.

관악산 자락 숲에 둘러싸인 전원 분위기,편리한 교통,편의 시설….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나는 강북의 작은 아파트 생활에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한 적도 있다.

내가 서울에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떠나지 않겠노라고.그런데 최근에 이런 나의 집에 대한 자부심이 살짝 흔들리는 일이 발생했다.

고등학교 동기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내게 자기 아들 중매를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아내의 며느리 선택 기준이 꽤 까다로워.일류대학을 나와야 되고 집은 꼭 강남에 있어야 된단다."

앗,이게 무슨 말인가? 뭔가로 세차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집이 신분재 역할까지 맡게 되었단 말인가.

나는 그래서 요즈음 천둥처럼 코고는 것,아들을 마루에서 재우는 것 말고 또 하나의 미안함을 숨긴 채 아이들을 대한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내 아이들이 나중에 아버지와 같이 산 작은 아파트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