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형급 로펌(법무법인)에서 대표를 비롯한 네 명의 변호사가 이달 초 한꺼번에 세종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로펌이 합병을 추진하다 일이 틀어지면서 일부가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나와 새롭게 둥지를 튼 것.양측은 "변호사 빼오기로 보지 말아 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변호사 업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특히 초대형 외국 로펌의 국내 상륙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로펌마다 소속 변호사 단속 등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화우는 최근 '사건 강제 배당제'를 도입했다.

판·검사 출신의 전관이 많은 화우는 철저한 성과급제로 운영돼 왔다.

전문 영역과 무관하더라도 사건을 따 오는 변호사가 그 사건을 해결하고 두둑한 인센티브도 챙겼다.

이에 반해 사건 수임에 부담을 느낀 변호사들에게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러다 보니 로펌에 생명과도 같은 '전문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에 따라 화우는 일단 사건을 수임하면 전문 영역별로 분류한 15개 팀에 사건의 성격에 따라 강제로 할당키로 했다.

예컨대 조세팀 소속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했더라도 공정거래 관련 사건일 경우 공정거래팀 소속 어소시에이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다는 식이다.

고소득군에 속하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들에게도 높은 보수 만한 '당근'이 없다.

김앤장과 더불어 국내 최고의 보수 수준을 자랑하는 율촌은 36명 전체 파트너 변호사에게 10억원짜리 생명 보험을 선물했다.

사고 원인은 불문이며 물론 업계 초유의 일이다.

올초에는 '국내 변호사 100명' 고지도 넘어 질과 양에서 외부의 공격에 확실한 차단막을 쳐 놓았다.

로펌 대표들마다 '1등 로펌이 되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내부 불만 무마용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자존심 강한 변호사들에게 2,3류 로펌은 재빨리 말을 갈아타야 할 로펌 후보 1순위이기 때문이다.

1위 탈환을 겨냥한 방법론에선 로펌마다 각양각색이다.

광장과 세종은 흡수합병 등을 통한 덩치 키우기 전략을 구사키로 했다.

이미 '짝짓기'를 통해 몸집을 불려 본 경험이 있는 데다 김병재 김두식 두 대표변호사의 의지도 확고한 편이다.

김병재 광장 대표는 "변호사 500명 규모로 대형화하기 위해 국내 로펌과의 인수·합병을 고려 중"이라며 공개 구혼장을 내보인 상태다.

최근 금융감독원과 씨티은행 출신의 전문 변호사들을 영입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모자라다"는 반응.김두식 세종 대표는 일본 서열 3위 로펌이었다가 5위 아사히 콤마 법률사무소의 국제 부문을 흡수,지난 7월1일부로 변호사 수 319명의 1등 로펌으로 올라선 니시무라 도키와 법률사무소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겠다는 눈치다.

최근에는 세종에서 분가해 나간 로펌으로부터 변호사들이 하나 둘 복귀하면서 한층 고무된 모습이다.

"실력 있는 작은 로펌이나 프랙티스 그룹 영입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현 단계 공식 멘트.

글로벌 로펌과의 네트워킹 구축은 국내 몇 위라는 '우물'을 벗어날 수 있는 우회 전략이다.

로펌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세계적 로펌들을 외연 확대의 파트너로 삼을 수 있어서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로펌의 입질에 '방패막이'로도 활용 가능한 1석3조 포석이다.

"한국 중국 일본 호주 4개국 로펌 간 제휴를 추진하겠다"는 이정훈 태평양 대표의 '태평양지역 로펌 동맹' 구상이 대표적이다.

이는 일찌감치 중국과 일본 등지에 대표 사무소를 설치해 놓고 '인맥 쌓기'에 공을 들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은 '인재 뺏기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하지만 상대가 수천 명 변호사를 보유한 글로벌 로펌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앤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문화 세분화에 주력해 온 만큼 앞으로도 분야별 최고 변호사로 커 갈 수 있도록 인재 투자 강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