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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물서 틈새공략…세계가 주목하는 '强小'기업의 힘

'강소(强小)' 기업의 나라 스위스의 3대 명물은? 시계와 초콜릿,그리고 빅토리녹스(Victorinox)의 휴대용 칼이다.

우리에겐 '맥가이버 칼'로 더 잘 알려진 포켓 칼 '스위스 챔프'다.

노란색 긴 머리를 휘날리며 현란한 기술로 위기를 탈출하던 TV 속의 주인공 맥가이버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에 항상 들려있던 주머니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중지만한 크기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안성맞춤인 이 스위스 챔프는 칼ㆍ드라이브ㆍ톱ㆍ정은 물론,낚시용구ㆍ가위ㆍ플라이어 등 31가지 기능을 갖추고도 무게는 1백85g밖에 나가지 않는다.

여기에다 실 바늘 1회용 밴드를 포함하면 최대 45가지 기능을 갖는다.

사람들은 이를 '서바이벌 키트'(Survival Kit)라 부른다.

무인도에서도 이 서바이벌 키트만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포켓 칼의 정식명칭은 스위스 '아미 나이프(Army Knife)'.탄생 배경은 스위스군에 납품되면서부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아미 나이프가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1897년 스위스의 군 장교들에 의해 단순한 군용 칼로 고안된 이 칼은 금세기 들어 세계적인 여행 붐이 불면서 송곳,병따개 등 다목적 칼로 변신해 거의 온 지구인이 쓰는 상품이 됐다.

수출대상국만 100여개국이 넘는 빅토리녹스는 매년 2600만개를 팔아 2억달러(한화 약 24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매출액 90%가 수출이며 부채도 전혀 없다.

'상품이 아니라 예술품을 만든다'는 장인정신과 자부심으로 녹슬지 않는 튼튼한 칼을 만드는 데 주력한 것이 비결이다.

창업자 엘스너의 어머니 이름인 '빅토리아'와 '흠 없다'는 뜻의 프랑스어 'Inoxydable'에서 따온 그 이름에서부터 명품의 자부심이 배어난다.

단단한 쇳조각을 깎아 만든 60여개 부품이 450개가 넘는 공정과 열처리 과정 끝에 하나의 칼로 탄생한다.

시중에 팔리는 제품 모두를 90명이 넘는 전문가가 3번씩 검사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칼이 뉴질랜드에서 강물에 추락한 자동차에서 어린이를 구했고,인도항공에서 어린이 질식사고가 일어났을 때 수술 칼로 사용된 것은 유명한 일화.

빅토리녹스의 아미 나이프처럼 보통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세계적 명품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숨어 있는 1인치의 과학'을 발굴했다는 점이다.

버버리와 루이비통이 그렇고,페라가모와 지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쟁쟁한 브랜드들이 그렇다.

코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버버리'는 화학의 발전과 큰 관련이 있다.

19세기 말 레인코트는 모두 고무로 만들어져 무겁고 불편했다.

버버리의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는 빗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직물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결국 날실과 씨실을 직각으로 조밀하게 짠 후 화학수지로 방수가공해 '개버딘'이라는 옷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볍고 방수,방한,통기성이 뛰어난 이 옷은 이제 가을이면 누구나 한번쯤 입고 싶어 하는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됐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스커트가 날리던 장면.그때 마릴린 먼로가 신은 신발이 바로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만든 하얀 샌들이다.

지금도 많은 구두 브랜드들이 명품으로 대우받고 있지만,페라가모가 최고로 꼽히는 이유는 인체의 구조를 연구해 만든 디자인에 있다.

'V'자와 'L'자가 겹친 도안으로 유명한 가방을 만든 루이비통은 고정관념을 깬 직육면체의 가방으로 히트한 케이스다.

루이비통이 처음 등장한 1850년대 당시 궤짝이나 만들 때 사용하는 사각 디자인으로 여행 가방을 만든 것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런데 이 가방은 몇 개라도 손쉽게 겹쳐 올릴 수 있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이후 여행가방의 표준이 됐다.

19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공장에서 조지 블레이스가 지포라이터를 처음 선보였을 때도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뚜껑에 경첩을 달아 여닫을 수 있고 심지 주변에 구멍 뚫린 철판을 둘러 바람 속에서도 켜지게 한 라이터는 파격 그 자체였다.

마모가 잘 되지 않도록 철을 제련해 발화바퀴를 만들고 심지에 구리선을 넣어 수명이 오래가도록 한 것이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변화의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변신하고 탄탄한 성장 축을 만들어낸 글로벌 중소기업의 사례.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기술ㆍ서비스혁명을 주도해가는 '마켓 프런티어'들의 경영현장은 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대충' 만들어서는 상품력도,생명력도 당연히 없다.

기업 경영자들이 24시간을 고뇌해야 하는 이유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