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엔진 부품 전문 벤처기업인 진명21(대표 노성왕)이 협력업체의 애로사항 해결에 나섰다가 전공과는 상관없는 고압펌프·간이 소방장비·친환경건자재 등 세 가지 신기술 제품을 잇달아 개발,사업화로 연결시켰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협력업체로 엔진모듈을 주로 생산해온 진명21의 노 대표가 이처럼 사업다각화에 나선 것은 2001년 우연하게 한 부품 협력업체 기술담당자를 만나면서 비롯됐다.

금속부품 가공에 사용하는 일본제 '워싱머신'의 수압이 너무 낮아 자동차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할 때 엇비슷한 얘기를 접했던 노 대표는 "압력을 키우면 해결될 일"이라며 즉각 워싱머신용 펌프개발에 착수했다.

엔진모듈 조립기술이 축적된 만큼 기계기술 몇 가지만 개발하면 금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펌프를 진공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로타(물을 빨아들이는 프로펠러 역할)를 고무수지로 코팅해야 하는데,이 수지에 기포가 발생해 기밀도가 유지되지 않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할 줄 알았던 기술 개발은 5년간 무려 2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렇지만 결과물은 기대를 넘어섰다.

당초 목표였던 일제 워싱머신 펌프수압(7~10kg/㎠)의 두 배 이상인 20kg/㎠의 상용 압력을 확보,지하 10m에 있는 물을 지상 200∼300m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초고압 펌프가 나왔다.

이 펌프는 특히 분출량까지 일반 원심 펌프보다 3∼4배나 많아 '압력과 분출량은 반비례 한다'는 업계의 기존 상식을 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고압펌프는 곧 성인 한 사람이 끌고 다닐 만한 크기의 고압소방장비 '소방이' 개발로 이어졌다.

물이 4.5m 이내에서 공급돼야 가동하는 일반소방장비와 달리 9m 밖의 물을 흡입,50m 이상 쏘아올림으로써 각종 소방장비 전시회에서 "웬만한 소방차에 맞먹는 화재진압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게다가 회사는 고압펌프용 로타 개발과정에서 골치를 썩였던 발포수지까지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탄산칼슘과 폴리우레탄을 섞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발포수지에 폐지와 황토 등 각종 재료를 섞어 넣어 기존 제품보다 강도와 보온 단열성 등이 최고 50% 이상 높아진 인조목재를 만들어 냈다. 이 제품은 유해 접착제나 포름알데히드 등을 쓰지 않아 새집증후군을 일으키지 않는 데다,100% 재활용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회사는 최근 인조목재를 응용한 인조벽돌,인조타일 양산에도 나섰다.

노 대표는 "고압 펌프의 경우 선박 갑판 물청소에 쓰겠다며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월 300~400대 규모의 독점 공급을 요청하고 있고,소방이도 울산시 등 여러 지자체가 공공시설 비치용으로 대량 구매 의사를 잇달아 밝혀왔다"며 "세 가지 제품을 합해 연간 100억원의 추가 매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회사는 고압펌프와 인조목재 제조기술 등으로 6개의 특허를 획득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