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奇和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우리 사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당사자들끼리 자율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법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자율적인 정치 결사체(結社體)인 정당조차도 당내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 집행기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심판청구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1989년 425건에 지나지 않았던 심판청구가 작년에는 1705건으로 4배가 넘게 증가했다.

특히 DJ정부 이후 크게 늘어나고 있다.

1989∼1992년에는 연평균 361건,YS 정부 때인 1993∼1997년에는 460건에 지나지 않던 것이 DJ 때인 1998∼2002년에는 923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서도 2003∼2006년 사이에 연평균 1388건으로 이전 정권에 비해 50% 이상 늘어났다.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심판건수의 대부분은 공권력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제기된 것들이다.

작년의 경우에도 심판청구의 91.6%가 이에 해당됐다.

심판청구가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신장됐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권리의식 신장에 비례해 국민들의 기본권을 적극 보호하기보다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리 침해를 받았다고 여긴 국민들이 헌법재판소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DJ정부 이후 심판청구가 크게 늘어난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은 이들 정부가 특정 이념에 사로 잡혀 보편성에 어긋난 무리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현 정부에서 제기된 주요 심판청구사건만 하더라도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신문법,사학법 등 정부의 주요 정책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들 정책은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 무엇인가 바꾸어 놓겠다는 조급함에서 시행된 것들이다.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과정상의 문제는 목적이 정당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문제점을 지적하면 마치 반개혁적이고,수구적(守舊的)인 사람처럼 비난받았다.

하지만 목적이 그럴 듯하다고 해서 항상 의도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나 방법이 자립,재산권,자유시장 및 제한된 정부에 기초하지 않으면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조차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이익집단의 로비에 의해,그리고 권력의 유지를 위해 쉽게 변질돼 버린다.

현실을 보면 어려운 처지에 빠진 안타까운 개인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로 인해 어떤 때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개인들의 노력에 의해 발전해 왔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이들을 위한다는 법을 잘못 제정하면,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자신이 보호하고자 했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이라도 구하고자 했던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법이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다양한 개인들의 이해(利害)를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법률은 국민이면 누구나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포괄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라야 한다.

법률의 제정자가 각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집단들이 표를 얻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법률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많은 국민들은 법을 버거워하고 있다.

이제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위축시키는 법률 제정이 줄어들어야 한다.

법이 많아지고 그러한 법이 성공적일수록 전체주의 사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도 개인의 섬세함을 희생해 얻은 것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