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은 어떻게 큰 것을 이기나.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최우선의 기준은 스피드다. 가볍고 자유롭고 빨라야 한다.

13세기 몽골의 인구는 고작 100만명.하지만 칭기즈칸과 그의 자손들이 정복한 인구는 1억명.한 사람이 무려 100명을 지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군대에 있었다.

몽골은 20만명의 기마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4000km의 거리를 열흘에 주파했다.

지금 성능 좋은 자동차로 달려도 힘든 거리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몽골 기마병들에겐 1명당 다섯 마리 정도의 말이 배당됐다.

장거리 이동으로 말이 지치면 즉각 새 말을 갈아탈 수 있었다.

몽골군은 또 '보르츠'라고 불리는 1년짜리 비상식량을 모든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보르츠는 양고기를 세로로 길게 잘라 석달 이상 건조한 창고 등에서 바싹 말린 뒤 절구로 빻은 고깃가루.몽골군은 이것을 신축성이 좋은 소나 양의 방광에 저장해 휴대했다.

더운물에 풀어서 마시면 10kg짜리 보르츠 하나가 1년짜리 비상식량이 됐다.

언제든 기민하게 이동해야 했던 상황에선 이보다 좋은 식량이 없었다.

물론 기마전이 없는 현대전에선 사람과 물자의 스피드보다 정보와 전술의 스피드가 더 강조될 것이다.

스피드의 군사적 가치가 이렇다면 산업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는 가격 책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자사만이 생산하고 있는 신제품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초과이윤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40나노급 32기가비트 낸드플래시를 살펴보자.이 반도체를 8기가바이트짜리 제품으로 출시할 경우 초기에 150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제품의 제조원가는 제품가격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구·개발(R&D) 비용도 20∼30% 언저리다.

나머지는 모두 이익이다.

이것이 바로 스피드의 가치다.

경쟁사들이 이 스피드를 따라잡기 전까지는 항상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제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은 네트워크다.

몽골군은 점령 지역에 40km의 거리마다 역을 세우고 말과 식량,물자와 전투장비 등을 배치했다.

역참과 역참 사이에는 소식을 전하는 파발꾼을 임명했으며 모든 점령지를 거미줄과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파발이 갖고다닌 패자(牌子)는 몽골제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신분증이었으며 앞을 막으면 누구라도 벨 수 있는 강력한 권한까지 보장하는 것이었다.

몽골의 지도자들은 정보전달 속도가 제국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신속한 병참라인이 없었더라면 몽골군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총 6000km에 이르는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또한 몽골군의 스피드를 가능케하는 인프라이기도 했다.

몽골의 파병제는 1579년에 파발제를 도입했던 조선보다 300년이나 앞섰던 것이었다.

기업 조직에서 네트워크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델 컴퓨터.이 회사는 반도체 부품생산 포장 배송 애프터서비스 분야의 외부 전문기업들을 정교한 네트워크로 통합해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는 조건반사형 조직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PC 판매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함으로써 IBM과 같은 전통의 강자들을 시장 밖으로 쫓아버렸다.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도 네트워크를 활용해 성장한 대표적인 산업이다.

특히 한국의 게임업체들은 게임은 혼자서 하는 것이라는 상식을 파괴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네트워크로 연결해 단숨에 수조원대의 산업으로 키웠다.

넥슨을 창업한 김정국 넥슨홀딩스 사장은 혼자 하거나 1대 1 정도가 고작이었던 게임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럿이서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바람의 나라'를 1996년에 개발했다.

'바람의 나라'는 동시에 10만명이 접속하는 등 인기를 끌었고 이후 네트워크에 착안한 다수의 온라인게임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한게임,리니지 등 온라인게임 히트작들이 나오면서 게임 변방 한국을 세계 게임의 중심지로 만드는 역할도 했다.

농사를 짓는 시골 할머니들은 한 번의 호미질에 서너개의 고구마를 캐낸다.

젊은 사람보다 힘은 없지만 고구마를 캐는 생산성은 몇 배나 된다.

고구마와 줄기들이 땅속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돼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할머니가 지닌 능력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힘인 것이다.

작은 힘이 모여 큰 힘을 역전시키는 마지막 동력은 '소프트 파워'다.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 콘텐츠 등과 같은 소프트 파워는 아이디어가 많고 학습속도가 빠른 소조직에서 더 창발한다.

'1인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앤 롤링이 쓴 마법사 이야기 '해리 포터'는 영국 경제에 연간 60억달러의 부가가치를 가져다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리즈의 최종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도들(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이 출간된 21일,이 책은 전 세계에서 초당 15권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국내 밥솥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쿠쿠홈시스는 1998년 '쿠쿠'라는 독자브랜드를 선보이며 삼성 LG 등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1978년 '성광전자'로 출범해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대기업들에 밥솥을 납품한 지 20년 만이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쿠쿠홈시스는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큰 조직이 좀처럼 추진하기 힘든 디자인 혁신,서비스 혁신,마인드 혁신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