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의 '쌈지길'과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의 '딸기가 좋아'라는 딸기 테마파크를 설계한 최문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47)는 독특한 감각의 건축 디자이너로 주목받고 있다.

"대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몇 제곱미터(㎡)냐'를 따지지,'천장의 높이가 얼마인가'를 묻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안타깝습니다.

건물을 면적(㎡)이 아닌 부피(㎥)의 공간으로 봐야 제대로 된 건축 디자인 안목을 기를 수 있습니다.

" 2명의 동료 건축가와 함께 작업한 헤이리의 딸기 테마파크에 대해 그는 "캐릭터 '딸기'가 사는 곳은 가상의 세계여야 한다는 생각 아래 설계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가상의 캐릭터인 '딸기'에 어울리게,테마파크 공간을 일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세계로 꾸민 것.딸기 테마파크는 많은 공간들이 경사져 있어 불안정한 자세로 다녀야 하지만,사람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건축가의 자질은 호기심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공간적인 감각이 필요하겠죠.그러나 예쁜 건물,재미있는 건물을 짓는 것보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호기심을 갖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당연하게 스며든 건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갖고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980년 연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해 줄곧 건축가로서 한길만 걸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을 마치고,1988년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991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미국 유학 시절 배운 것은 건축 설계에 대한 이론이 아닌 '다양한 시각'이다.

'옳다 그르다'만 존재했던 그 시절,유학 생활에서 '다름'을 보는 눈을 얻었다고.

석사 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도요이토 건축사 사무소에서 1년간 실무경험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한울 건축,시 건축에서 일한 뒤 1999년 드디어 '가아건축'이라는 자신의 설계 사무소를 차리게 된다.

전주 전통문화 센터,목포대 정보 도서관,경기도 광주 쌍령초등학교 등 여러 현상설계(설계안을 경쟁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으로,우수한 설계안과 프로젝트를 수행할 능력 있는 건축가를 찾는 목적으로 실시)에 당선되면서 건축가 최문규는 국내 건축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작품은 파주시 출판단지에 들어선 독서지도회 건물이다.

"아주 조그만 창고였어요.

사각형 건물인데 네 면의 재료가 다 달라요.

주위의 네 길이 각각 다른 재료의 도로로 만들어지도록 방침이 정해져 있어 돌멩이,황토,벽돌,패널로 벽면을 만들었죠." 바닥과 벽면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 건물은 사진으로 봐도 독특해 보였다.

또 하나의 건물은 소설가 정한숙 기념관.산과 들로 둘러싸인 자연 한가운데 위치한 건물로 중간은 완전 투명 유리,건물의 위쪽은 사방을 대형 거울로 마무리했다.

거울에 비친 밤·낮의 풍경,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변화가 건물의 외형에 그대로 담겨졌다.

보통 건축물 하나를 설계하는 데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진행된다.

"규모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보통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해요.

그래서 팀워크가 제일 중요합니다."

건축 디자인하는 데에 보통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협업이 더 중요하다고."여러 개미들이 먹이를 운반해 갈 때 똑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래요.

각각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인데 결국 무거운 먹이를 목표 지점으로 운반한다고 합니다." 건축설계 작업도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결과물이 탄생하기 때문에 그는 늘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2005년 정식 교수로 임명돼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그에게 학교는 건축 디자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장소다.

그는 한 사람의 디자인을 정답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건축은 공간의 구성,공간과 공간의 관계,사용될 재료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돼 완성된다.

어떤 땅에 지어지느냐,사는 사람이 누구냐,어떤 용도로 이용되느냐,어떤 방법으로 짓느냐,얼마짜리냐 등을 고려하다 보면 모든 건축물은 각각 독특한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데서 건축의 재미를 느낀다.

"저는 건축 설계를 의뢰받을 때 설계비는 깎아 줄 수 있어도 시간은 깎아 주지 못한다고 말해요.

6개월 빨리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이득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오히려 시간이 걸릴수록 많은 생각이 담긴 디자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그는 평상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가아건축사무소에서 그의 전용 공간은 2평 정도.그곳에서 책 읽고,그림도 보고,아이디어 스케치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건축 아이디어는 관찰과 독서에서 나온다고.1년에 200여권의 책을 읽는 독서량만큼 작업실의 양쪽 벽면에는 책들로 가득하고,한쪽에는 그동안 그가 스케치해 놓은 메모장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설계사무소 사람들은 그를 '명랑 중년'으로 부른다.

1등을 위해 앞만 보며 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즐기고 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즐겁게 작업한다고."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는 거예요." 그는 말레이시아의 대형 쇼핑공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오늘도 자신의 건축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글=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