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萬 雨 < 고려대 교수·경제학 >

원래 적정수준의 정부 역할에 관한 규범적 법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시대에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정부의 기능이 규정돼 온 것이 상례(常例)다.

경제학의 원조(元祖)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정부의 역할은 치안 법률 국방 등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는 값싼 정부의 원리를 주장했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의 단순한 시장구조 하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이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정부나 국가의 기능은 야경(夜警)국가 이상일 필요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각국에서는 복지국가를 향한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실시 등 종래의 시장실패 치유 이상의 수준으로 '큰 정부'를 지향했으며 국내총생산(GDP) 중에서 공공부문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상과 같은 큰 정부의 추세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70년대의 고(高)물가 하의 경기침체란 경제적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과 그로 인한 비대한 공공부문에 의한 시장경제의 비효율에 의거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70년대의 경험을 토대로 최근에는 저출산,노령화 문제로 어려워진 재정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각국은 긴축예산,예산동결 등을 통해 큰 정부의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고 내실화를 추구하는 작은 정부로 복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세금 인하와 정부지출 축소,국가부채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평균 0.7%포인트 하락했고 정부지출은 0.4%포인트 줄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OECD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6.6%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들의 국가부채비율은 1990년대 이후 안정되거나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지난 10년간 캐나다는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31.4%포인트,영국은 3.7%포인트,이탈리아는 13.7%포인트 감소했다.

작은 정부와 시장 주도 경제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21세기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참여정부 4년간 국민의 세금부담은 1.2%포인트 늘었고,정부지출은 3.5%포인트 증가했다.

결과는 만성적인 적자재정과 국가부채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지난 10년간 5배 가까이 늘었고 노무현 정부 4년 동안 2.2배 이상 늘어 2006년 말 현재 282조8000억원(GDP의 33.4%)에 이른다.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부채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부채규모는 296조원에 달해 국가부채 규모에 버금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2년에 비해 4년간 51.8%,금액으로는 101조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다 6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까지 고려한다면 외환위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부채공화국이란 오명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재정은 이미 중병을 앓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세수증가율은 낮아지고 있다.

반면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국민욕구 상승과 함께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정부지출 수요가 세수증가율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다.

경기와 무관한 구조적인 재정적자가 재정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건전화의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국가균형발전,농어촌 지원,주한미군 재배치,자주국방,남북경협 등 국가경쟁력 향상과 무관한 재정지출의 급증 및 이를 충당하기 위한 세 부담 증가와 같은 방만한 재정,조세운영은 경제 활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의 철학을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세입,세출 및 공기업 혁신을 위한 일대 용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