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植 < 상명대 교수·경영학 >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재래시장 상인으로부터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건의받고 정치적인 사고로 풀어내면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다며 이를 배석한 재정경제부 차관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힘없는 사람한테 유리한 것을 대한민국이 하면 안 되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신용카드와 관련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 문제는 그동안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시장 경제를 단순히 '강자 대 약자'의 이분법적 구조로 풀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서민 복지와 시장 경제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시장 경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개인의 창의력과 능력 발휘,그리고 경쟁에 의한 효율성 증대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복지 정책의 실시 등을 통해서 별도로 구현돼야 한다.

현재의 재래시장 문제는 유통 구조의 문제다.

대형 할인 매장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구조 등을 포함한 시장 현실을 인정하고 재래시장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재래시장 상인을 보호하려 한다면 장려금 지급,세금 감면 등 정부에 주어진 권한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가맹점 수수료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정해지는 가격이다.

가격은 시장 원리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대통령이 지시한다고 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시장 내에서 신용카드사들 간의 경쟁을 통해,그리고 카드사 가맹점끼리의 거래 조건에 대한 당사자 간 교환 및 계약을 통해 가격 인하가 이뤄져야 하고 정부는 그러한 여건을 조성해 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에 경제 관료들이 즉시 수수료 인하 작업에 착수하는 모습은 관치(官治)보다 더한 '노치(盧治·포퓰리즘적 시장 개입)'에 다름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산정에 대해 몇 가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첫째로 지급결제 서비스는 정부가 제공해야 하는 일종의 공공재(公共財)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은행 등 민간 부문에 이 서비스를 위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용카드의 지급결제 서비스 가격인 가맹점 수수료는 공공재적 성격임을 감안하고 신용카드사의 사기업성을 고려해 그 결정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

따라서 가격 설정에는 수익성 및 원가뿐만 아니라 형평성 및 사회 복지라는 요소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됐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가 단지 협상력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으며 가맹점 수수료가 올바르게 책정됐음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이제는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사들은 적정 원가를 산출하고 여기에 적정 이윤을 붙인 가맹점 수수료율(Prime Rate)을 책정한다.

그리고 가맹점별 매출액,수익 기여도,대손율,소비자불만 발생 빈도,철회·항변 접수 실적,분실·도난 사고율 등을 종합한 가맹점 평가에 근거해 수수료율을 가감하는 슬라이딩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셋째로 가맹점 수수료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부 상인들은 여전히 가맹점 수수료를 단지 세금에 준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가맹점 수수료는 매출을 증대시키고 현금 거래에 따른 대손 위험을 회피하는 등 가맹점들이 향유하는 혜택에 대한 정당한 마케팅 가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카드 가맹점으로서의 효익을 실제로 느끼지 못하는 상인들은 언제든지 가맹점을 탈퇴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의 지급결제 서비스는 고도화된 소비 시대에 모든 소비자가 향유하고 보호해야 하는 공공재적 서비스다.

신용카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포퓰리즘에 편승해서 단기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뒤엉킨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가듯 정교하고 치밀하게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

신용카드사들 또한 기업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소비자 복지의 총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과 적정 이윤을 균형되게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