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문제는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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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자판기 입력 타수는 하루 평균 5000회 이하로 한다.''1일 입력 시간은 200분 이내로 제한한다.'
1979년 일본의 사회보험청이 직원 노조에 써준 '각서'다.
당시 사회보험청은 연금기록 서류를 전산화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산화로 '철밥통'이 깨질 위협을 느낀 노조가 반발하면서 이런 업무수칙이 생겨났다.
자판기 타수 5000회라면 숙달된 사람은 20~30분이면 끝낼 일이다.
노조는 하루에 그만큼씩만 일하겠다고 버틴 것이다.
사보타주(sabotge:태업)를 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가 지금 터져 나온 일본의 연금기록 관리부실 문제다.
연금보험료를 받긴 받았는데 누가 낸 것인지 모르는 게 5000만여건, 보험료를 받았지만 전산 기록이 없는 것이 1430만여건….사회보험청 직원들이 보험료 납부서류를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잘못 쳐 넣었거나,아예 빠트려 엉망이 돼 버린 연금기록부실의 현주소다.
연금관리 부실은 아베 신조 정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작년 9월 출범 때 60%를 넘었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로 반토막 났다.
내달 말 참의원 선거에선 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가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의 도중하차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모든 일에 정확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사회보험청 직원들의 말도 안 되는 사보타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은 사회보험청 조직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풀린다.
노조에 '각서'를 써줄 당시 사회보험청장은 후생노동성 간부 출신 낙하산 인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보험청장은 상급기관인 후노성 간부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엔 고액 연봉의 민간단체장으로 연이어 낙하산을 타는 게 코스다.
사회보험청장은 징검다리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노조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지내는 건 오랜 관행이다.
낙하산 인사만 보면 후생성은 심각하기짝이 없다.
일본 국회가 최근 공무원 낙하산 인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후생성 출신으로 민간단체나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4007명에 달했다.
정부 성청(省廳) 중 국토교통성(638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후생성 퇴직 직원 15명은 전공과 무관한 전산관리회사 NTT데이터의 임원 등으로 근무 중이다.
NTT데이터는 문제가 된 연금기록 전산 프로그램을 납품한 회사다.
공공사업을 발주한 대가로 직원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낸 의혹이 짙다.
결국 일본의 연금문제는 뿌리 깊은 낙하산 인사와 그 아래서 싹튼 공무원들의 태만이 얽혀 곪아 터진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연금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면서 공무원 개혁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낙하산 인사 금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개혁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며 회기까지 연장했다.
뒤늦게나마 맥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어떤가.
선진국 정부들이 '작은 정부''공무원 개혁'에 몰두하는 동안 참여정부는 공무원을 5만여명이나 늘렸다.
지난 4년여간 낙하산 인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 노조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10년 후 20년 후 일본의 '연금 사태'가 한국에서도 터지지 말란 보장이 있을까.
도쿄=차병석 특파원 habs@hankyung.com
1979년 일본의 사회보험청이 직원 노조에 써준 '각서'다.
당시 사회보험청은 연금기록 서류를 전산화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산화로 '철밥통'이 깨질 위협을 느낀 노조가 반발하면서 이런 업무수칙이 생겨났다.
자판기 타수 5000회라면 숙달된 사람은 20~30분이면 끝낼 일이다.
노조는 하루에 그만큼씩만 일하겠다고 버틴 것이다.
사보타주(sabotge:태업)를 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가 지금 터져 나온 일본의 연금기록 관리부실 문제다.
연금보험료를 받긴 받았는데 누가 낸 것인지 모르는 게 5000만여건, 보험료를 받았지만 전산 기록이 없는 것이 1430만여건….사회보험청 직원들이 보험료 납부서류를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잘못 쳐 넣었거나,아예 빠트려 엉망이 돼 버린 연금기록부실의 현주소다.
연금관리 부실은 아베 신조 정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작년 9월 출범 때 60%를 넘었던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로 반토막 났다.
내달 말 참의원 선거에선 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가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의 도중하차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모든 일에 정확하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사회보험청 직원들의 말도 안 되는 사보타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은 사회보험청 조직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풀린다.
노조에 '각서'를 써줄 당시 사회보험청장은 후생노동성 간부 출신 낙하산 인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보험청장은 상급기관인 후노성 간부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엔 고액 연봉의 민간단체장으로 연이어 낙하산을 타는 게 코스다.
사회보험청장은 징검다리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노조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지내는 건 오랜 관행이다.
낙하산 인사만 보면 후생성은 심각하기짝이 없다.
일본 국회가 최근 공무원 낙하산 인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후생성 출신으로 민간단체나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4007명에 달했다.
정부 성청(省廳) 중 국토교통성(6386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후생성 퇴직 직원 15명은 전공과 무관한 전산관리회사 NTT데이터의 임원 등으로 근무 중이다.
NTT데이터는 문제가 된 연금기록 전산 프로그램을 납품한 회사다.
공공사업을 발주한 대가로 직원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낸 의혹이 짙다.
결국 일본의 연금문제는 뿌리 깊은 낙하산 인사와 그 아래서 싹튼 공무원들의 태만이 얽혀 곪아 터진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연금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면서 공무원 개혁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낙하산 인사 금지를 골자로 한 공무원 개혁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며 회기까지 연장했다.
뒤늦게나마 맥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면 어떤가.
선진국 정부들이 '작은 정부''공무원 개혁'에 몰두하는 동안 참여정부는 공무원을 5만여명이나 늘렸다.
지난 4년여간 낙하산 인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 노조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10년 후 20년 후 일본의 '연금 사태'가 한국에서도 터지지 말란 보장이 있을까.
도쿄=차병석 특파원 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