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직장인들이 여름 보너스까지 털어 해외 투자에 나서 엔화 가치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엔화로 받은 뭉칫돈을 달러나 유로화로 바꿔 해외투자펀드와 외화예금에 넣어 두려는 직장인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싼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를 촉발시킨 개미들이 보너스까지 외화자산에 투자하는 'Sell The Yen'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1일 "이달 말까지 일본의 증권사 은행 자산운용사 등이 일본 직장인을 겨냥해 총 1조5000억엔 규모의 해외투자펀드를 팔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외환시장에 추가적인 엔화 매도 물량이 잔뜩 대기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직장인들이 해외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일본 은행들이 지급하는 이자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일본 은행예금에 묻어둘 경우 연 0.35% 정도의 쥐꼬리만한 이자만 받는다.

반면 엔화를 팔고 호주달러를 매입해 호주은행에 맡기면 연 6~7%의 이자는 너끈히 챙긴다.

영국 미국 등에 투자해도 연 5% 안팎의 이율은 무난하다.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해외펀드를 사게 되면 더 짭짤한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단카이세대'의 퇴직금도 엔화 약세를 부추길 복병으로 지목되고 있다.

단카이세대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700만명에 달한다.

이 중 첫 세대가 올해부터 정년을 맞게 된다.

50조엔(약 380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단카이세대의 퇴직금이 올해부터 풀리는 것이다.

단카이세대 역시 초저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노후를 생각해서라도 좀 더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투자펀드와 외화예금에 몰릴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엔화 엑소더스'에 기름을 붓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일본 가계의 해외 자산 비중은 전년 대비 25% 증가한 46조엔에 달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처럼 일본 개미들의 엔화 매도 물량까지 외환시장에 쏟아지면서 엔화가치는 달러당 123엔 후반대로 하락했다(엔·달러 환율 상승).4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엔화가치가 곧 125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엔화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165엔대로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들어 엔화는 세계 주요 16개국 통화에 대해 모조리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엔화 유출이 급증하자 엔화 약세의 근본 원인인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스터 엔(Yen)'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차관(와세다대 교수)은 "지나친 엔화 약세로 '엔 캐리 트레이드'에 위험한 수준의 거품이 형성됐다"며 "일본이 조만간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는 시장 전문가도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7명의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11명이 올 8월에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의 금리 인상 시기를 올 가을쯤으로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