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의료기기제조 벤처기업인 듀죤의료기의 두홍직 사장은 2005년 기술 하나만 믿고 시도했던 미국 시장 진출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개인용 초음파 조합자극기(체지방 다이어트 의료기) 대리점 사업에 대한 뼈아픈 기억 때문.

초음파와 중저주파 자극으로 불필요한 체지방을 줄여주는 특허제품이란 말에 호기심을 보이던 미국 소비자들은 "안 사도 좋다.

석 달간 그냥 써본 뒤 판단하라"는 권유에 손사래를 쳤다.

품질에 자신을 가진 한국 중소기업들이 국내에서 곧잘 펼치는 무료체험 마케팅이 현지에서는 통하지 않은 것.'공짜'를 부담스러워 하는 미국식 문화가 내면적으로 있었겠지만 사실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불신'이 진짜 이유라는 것을 나중에 현지 대리점주들의 얘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24개로 시작한 대리점 사업은 1년도 안 돼 달랑 7개로 쪼그라들었고 마케팅 비용 10억원도 날렸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 낮은 중소기업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미국에서의 실패가 러시아에서는 단번에 희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운 모스크바 시내의 무료체험방 앞에 개장 첫날 새벽부터 주민들이 수백m나 줄을 선 까닭.현지 경찰이 "불법집회가 열린 게 아니냐"며 긴급 출동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기업의 제품 설명회"라는 설명에 "삼성과 LG를 좋아한다"며 질서 유지를 돕고는 조용히 되돌아갔다.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미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심지어 현지 총판권 협상에 나온 현지 유통업자는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 출신인 두홍직 대표가 한때 특허법률사무소의 부소장 자격으로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에 기술 컨설팅을 했었다고 하자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두 대표는 "값이 비싸다고 떨떠름해 하던 계약자가 서명하겠다고 갑자기 나서 멋쩍기까지 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는 실적으로 연결됐다.

2001년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인 437억원어치의 수출계약을 현지 유통업체 3곳과 체결한 것.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110억원) 4배가 넘는 것이다.

대리점을 하겠다는 신청자 중에는 현직의사가 20%에 달할 만큼 제품에 대한 신뢰도 두터웠다.

두 대표는 "기술적으로야 자신 있었지만 솔직히 러시아 현지에서 삼성 LG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파워가 없었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되묻곤 한다"고 털어놨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