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이 이달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저지를 위한 정치파업을 벌이기로 결정한 데 대해 비난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명분도,정당성도 없는 간부들만의 정치파업으로 노동운동의 위기를 자초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금속노조가 일선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묻지 않고 파업을 강행키로 한데 대해 내부 조합원들의 반발도 심화되고 있다. 노조원들은 민주노총,현대차노조 게시판 등을 통해 "누굴 위한 정치파업이냐"며 파업지도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노동전문가들은 찬반투표없는 금속노조의 파업결정을 '노조 지도부만의 파업'으로 규정짓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노조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는 불법 정치파업을 강행하려다 보니 노조지도부가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며 "결국 노조 간부들만의 정치투쟁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정당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정치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후진적 노동운동의 행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선 노조원들의 반응도 격앙돼 있다. 현대차의 한 노조원은 노조게시판에 올린 '정치파업 누구를 위해 하나요'란 글을 통해 "(현대차) 지부장은 빨간조끼 소리만 듣지 말고 현장 목소리도 들어봐 달라"며 "제발 파업좀 그만하고 한단계 성숙된 노동조합이 되어 달라"고 촉구했다. 금속노조 노조원은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파업을 벌이겠다는 것은 찬반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조합원을 담보로 하는 정치파업은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금속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내건 한.미 FTA 저지와 산별교섭 성사 문제가 노동조합법에 규정된 파업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불법파업이라며 파업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최재황 한국경총 정책본부장은 "이번 파업은 사업장의 근로조건과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 정치파업"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이번 파업은 찬반투표 절차를 거치더라도 목적상 불법 파업인데 투표도 없이 파업에 돌입키로 해 조합원들의 지지도 받기 어렵게 됐다"며 "파업이 강행될 경우 법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임금과 근로조건 등과 관련해서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해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조건과 관련없는 정부의 제도나 정책 등을 이슈로 내거는 파업은 정치파업으로서 노동관계법상 금지돼 있다.


◆그들만의 파업으로 끝날 것

현대자동차 노조지부 등이 가입된 금속노조는 14만3000여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노조로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면 기업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현장 동력을 거의 끌어내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뜩이나 일선 조합원들이 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못마땅해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간부들이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무시하고 벌이는 어거지성 파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속노조가 조합원 찬반투표를 포기한 것은 정치파업을 벌여봐야 조합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볼 때 파업을 강행해도 노조간부들을 중심으로 참여하는 '그들만의 파업'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노사법.제도선진화방안 등을 반대하며 모두 12차례의 정치파업을 단행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참여열기는 극히 저조했다. 조합원 76만여명 가운데 5만명 이상 참여한 파업은 5차례 뿐이고 나머지 파업의 참가율은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