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30.CJ)가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짓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은 박세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뭉친 대회이다.

1955년 창설된 챔피언십은 LPGA 투어에서 US여자오픈(1946년 창설)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면서 아마추어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오픈대회인 US여자오픈과 달리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소속 선수들끼리 '최고'를 가리는 대회로 열어왔다.

창설 때부터 US여자오픈과 함께 양대 메이저대회로 치러진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은 숱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역대 우승자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역시 박세리이다.

박세리는 1998년, 2002년, 2006년 등 모두 세 번이나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을 제패해 미키 라이트(1958년, 1960년, 1961년, 1963년)에 최다 우승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메이저대회 왕관 다섯 개 가운데 세 개를 이곳에서 수확했다.

이 대회에서 세 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4승을 올린 라이트와 캐시 위트워스, 안니카 소렌스탐(이상 3승), 그리고 박세리 등 4명 뿐이다.

라이트가 LPGA 투어에서 82승, 위트워스는 88승, 소렌스탐은 69승을 따내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23승을 올린 서른살의 박세리가 이 대회에서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 지 짐작할 수 있다.

박세리는 더구나 생애 첫 우승과 기나긴 슬럼프에 종지부를 찍는 부활 우승을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올려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1998년 투어에 데뷔한 지 7개월 밖에 안된 '새내기' 박세리는 내로라 하는 강호들을 제치고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을 제패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만 21세에 불과했던 박세리는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LPGA 투어 역사에 아로새기며 '한국'과 '박세리'를 세계에 알렸다.

골프 불모지로 취급받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신인 선수가 난생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거머쥔 것은 당시에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 맺은 인연은 박세리에게 '고향'같은 푸근함을 안겨준 것일까.

전성기를 달리던 2002년 또 한번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박세리는 2004년부터 2년 이상 끌어온 지옥같은 슬럼프 탈출도 이곳에서 이뤄냈다.

80대 스코어를 내면서 컷오프를 밥 먹듯 하던 2005년을 보낸 박세리는 "이제 박세리는 끝났다"는 세간의 눈총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2006년 시즌도 암울하기만 했다.

개막전에서 41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박세리는 컷오프, 45위, 컷오프, 기권으로 이어지는 질곡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박세리는 '약속의 대회'에 나서자 신들린 샷을 날렸고 마침내 기나긴 슬럼프에 마침표를 찍는 우승을 차지했다.

더구나 앞선 두 개의 우승컵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듀폰골프장에서 일궈냈던 박세리는 대회 개최지가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의 불록골프장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을 완비하는 현장이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이 된 것도 박세리와 이 대회와 인연을 말해준다.

물론 시즌 열번 째 대회가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이 되도록 일정을 조정한 덕이기는 하지만 시즌 첫번째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이나 세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또는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혹은 '제5의 메이저'라는 에비앙마스터스 등이 박세리와 인연이 깊었다 해도 명예의 전당 입회를 확정짓는 현장이 될 수 없었다.

(하브드그레이스<미국 메릴랜드주>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