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는 권 대리(33)는 과중한 업무로 점심 먹을 새도 없이 항상 바쁘다.

저녁에도 거의 매일 야근한다.

그런데도 집에 와선 불면증에 시달린다.

가까스로 잡은 직장인데 계속 다닐 만큼 비전이 있는지 늘 고민한다.

#사례2 지난해 승진한 김 과장(36)은 3개월 전부터 결근이 잦았고 1개월 전엔 무단결근까지 했다.

박 이사(52)가 질타와 격려를 했지만 상태가 악화됐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쓰렸고 우울증도 보인다.

일을 해도 생각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례3 만년 과장 박씨(46)는 최근 승진에서 누락됐다.

목과 얼굴이 뻣뻣해지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우울증으로 일할 의욕이 전혀나지 않는다.

#사례4 전문경영인 최 사장(55)은 사실상 연말까지가 임기다.

실적이 좋아야 연임이 가능한데 요즘 국내외 경영상황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다.

그동안 자제했던 주량이 다시 늘었고 초조감 불면증 기억력감퇴 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우울증ㆍ위궤양등 직무 스트레스 증상 다양…"회사가 풀어줘야"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가 2001년 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 보유율은 95%로 미국 40%, 일본 61%보다 높게 나타났다.

2004년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가 전국 10개 기업에 27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긴장, 공격성, 신체화(정신질환이 육체질환으로 전이), 분노, 우울, 좌절 등 정신질환에 가까운 위험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전체의 20∼30%에 달했다.

이들은 증상이 더 심해지거나 장기간 지속되면 정신질환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다.

직급에 따라 직무스트레스는 원인과 양상이 각양각색이다.

직장 초년생은 현재 하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일을 하도록 지시받거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권한이 거의 없는데 업무방향이 갑자기 정해지거나 수시로 바뀐다.

상사가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는 더 커진다.

직장에 입사한 뒤 수년이 지난 초급간부는 주어진 임무가 경력개발과 승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 직장의 인사나 문화가 일정한 기준 없이 행해지는 데 불만을 품게 된다.

직장 내 중간관리자는 갈수록 업무량이 증가하는 데다 높은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요구받는 게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이다.

부하직원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고 타 부서와 마찰을 빚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도 그 하나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것도 늘 괴롭다.

임원급은 업무실적에 따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좌불안석이다.

이에 비해 오너경영인은 후임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할지,2세에게 조기이양할지 고민이 크다.

판단력은 점차 떨어지는데 2인자 시스템을 만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문제혁 산재의료관리원 인천중앙병원 건강관리센터 소장은 "하루의 3분의 2를 직장에서 보내는 현대인은 직무상 요구가 자신의 능력, 자원, 판단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럴 경우 소화성궤양 우울증 불면증 두통 불안장애 공황장애 요통 당뇨병 천식 갑상선질환이 유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종민 교수는 "2003년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11조3650억원으로 추산됐다"며 "이를 방치해두면 개인의 신체적 고통이 커질 뿐만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생산성 손실, 사고 증가, 사기저하, 이직률 증가,기업이미지 훼손, 노사갈등으로 직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므로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수면과 음주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스트레스 관리법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내 직장인 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15.9%가 수면으로, 12.7%가 음주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생산직 근로자 57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7.9%가 스트레스 관리법을 모르기 때문에 직장에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개인과 기업, 국가가 나서 직장인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