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1시 강원도 태백시 강원랜드 리조트 내 하이원 밸리콘도.4시간에 걸친 '태백산 산행'을 마친 뒤 식당에 모인 200여명의 동양그룹 임직원들 앞에 현재현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를 잡아든 현 회장은 대뜸 "이렇게 더운 날 등산으로 몸까지 더워졌는데 제가 왜 잠바를 입고 있는지 궁금하시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 동양 식구들한테 홍보 좀 하겠습니다.

이 잠바는 얼마 전 새 식구가 된 한일합섬에서 만든 '윈디클럽'이란 옷이에요.

가격도 저렴하고 디자인도 끝내줍니다.

주변에 홍보 좀 많이 해주세요.

뒷모습도 한번 보실래요"하며 몸을 돌렸다.

좌중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총수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는 긴장감은 어느 직원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자홍 한일합섬 부회장은 "길고 길었던 구조조정을 끝내고 그룹이 재도약하는 시점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아선지 요즘 현 회장의 얼굴이 더욱 밝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 회장은 이날 새벽부터 시작된 태백산 등반 길과 백두대간 종주 종단식 행사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산행 중 초록을 잔뜩 머금은 나무를 마주할 때는 "나무는 뿌린 대로,정성을 들이는 대로 자란다.

동양그룹도 나무처럼 정직한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15일 맞는 동양그룹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1년 전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산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현 회장을 비롯해 노영인 박중진 구자홍 부회장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 200여명이 참가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천제단을 오르내리는 4시간여 동안 현 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현 회장은 레저 분야에 새로 진출하는 등 그룹의 체질을 개선, 2012년엔 순이익 1조클럽 시대에 진입하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텐데요.


"50년이란 세월은 인생의 부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50여년간 영광과 고통을 모두 겪어낸 뒤 선진국 문턱에 왔지요.

동양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숱한 시련을 겪었고,또 이겨냈지요.

외환위기도 공적자금을 받는 대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새로운 50년을 향하는 자리에 섰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50주년 기념 행사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택한 이유는.

"산은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우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밀려들지요.

그 다음엔 정상에 오른 데 대한 혜택이 뒤따릅니다.

새로운 50주년을 준비하는 지금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임직원들과 함께 느끼기 위해 산행을 택했습니다."

-새로운 50년 동안 동양그룹은 어떤 모습이 돼있을까요.

"동양그룹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당장 그렇게 될 수는 없죠.그래서 저는 임직원들에게 먼저 '1등 마인드'를 갖고 1등이 될 수 있는 부문부터 파고들라고 주문합니다.

예컨대 1인당 생산성을 업계 최고로 끌어올리거나,가장 높은 펀드수익률을 기록하는 것도 나름대로 1등인거죠.그렇게 1등 분야를 넓혀나가다 보면 매출이나 수익에서도 1등이 될 겁니다.

현재 업계 1위인 동양종금증권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나 동양생명의 방카슈랑스 등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1등,세계 1등으로 뻗어나가도록 할 겁니다."

-신사업 진출 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을 키워나갈 계획은 없습니까.

"양보다는 질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에 중장기 매출 목표도 공개하지 않아요.

기업을 볼 때 가장 중요한 지표는 수익력이죠.앞으로 5년 내에 그룹의 순수익을 1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신사업은 '동양이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이거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거둘 수 있는 분야'인 경우에만 뛰어들 겁니다.

그래서 리조트 개발 사업에 뛰어들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M&A 시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겁니다.

'상시 M&A 시대'에 접어든 셈이죠.과거엔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주요 M&A 대상이었지만,앞으로는 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지는 우량기업 간 M&A도 많이 일어날 겁니다.

동양그룹도 시장을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본시장통합법 등이 시행되면 동양그룹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많습니다.

"증권 생명보험 투신운용 등 동양그룹 금융부문은 앞으로 '굉장히' 잘 할겁니다.

한국의 경제 개발 단계를 감안하면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은 앞으로 잘 될 수밖에 없어요.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된 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한국기업에 대한 저평가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도 1990년대 미국처럼 장기 상승기조로 갈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자본시장통합법마저 시행되면 동양의 금융계열사들은 더욱 좋은 실적을 낼 수 있겠죠."

-새로운 사업 기회는 어떻게 발굴합니까.

"기업인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시장이 보이고,사업 기회도 보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눈을 갖기 위해선 (변화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재계의 젠틀맨'이란 별명이 있는데.까마득한 부하직원에게도 굳이 존댓말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까.

"반말 때문에 싸움 나는 경우 많이 봤지요.

존댓말을 쓰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은 미연에 막을 수 있어요.

반말을 한다고 권위가 서는 것도 아니고,존댓말을 한다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저는 30여년 전 검사 시절에도 피의자에게 존댓말을 썼어요.

이제는 이게 훨씬 편합니다."

태백산=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 약력 >

△1949년 서울 출생
△1967년 경기고 졸업
△1970년 사법고시(12회) 합격
△1971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75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77년 동양시멘트 이사
△1983년 동양시멘트 사장
△1989년 동양그룹 회장
△1997년 전경련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