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악몽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벽은 역시 높았다.

한국 축구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의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에 뼈아픈 두 방을 얻어맞고 분루를 삼켰다.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2일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A매치에서 전반 31분과 후반 26분 라파얼 판데르 파르트에게 페널티킥 선제골과 추가골을 허용해 0-2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역대 전적에서 2전 2패가 됐고, 베어벡호는 출범 이후 A매치 전적 3승2무4패를 기록했다.

상암벌에서 5경기 무승(2무3패)의 징크스도 이어졌다.

반면 네덜란드는 독일월드컵 이후 7승3무의 무패 행진.
박지성, 이영표의 대안 찾기에 나선 베어벡호로선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무거운 숙제를 받아든 한 판이었다.

간간이 활기찬 플레이로 희망을 엿보게도 했지만 보완할 과제가 더 커 보였다.

베어벡 감독은 예고한대로 조재진을 원톱으로 놓고 염기훈과 이천수를 좌우 날개로 배치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김정우와 수비형 이호, 김남일로 중원을 꾸렸고 김동진, 김진규, 강민수, 송종국을 포백으로 세웠다.

이운재가 오랜만에 골문을 지켰다.

마르코 판 바스턴 네덜란드 감독은 클라스 얀 훈텔라르를 중앙에 놓고 A매치에 데뷔한 신예 안드벨레 슬로리와 판데르 파르트를 측면 공격수로 가동했다.

네덜란드는 초반부터 중거리포로 위협 사격을 했다.

전반 1분 슬로리가 가볍게 인사이드슛을 감았고 4분 베슬레이 스네이더르의 중거리포로 이운재 옆으로 흘렀다.

8분엔 판데르 파르트의 터닝슛이 크로스바를 넘었다.

한국은 전반 9분 이천수가 프리킥으로 첫 기회를 잡았지만 감아찬 킥이 골키퍼 가슴팍에 안겼다.

베어벡호는 박지성의 빈 자리에 자리잡은 김정우가 이천수와 호흡을 맞춰 상대 문전을 위협했다.

18분엔 이천수가 수비수를 제치고 공간을 봤지만 김정우에 찔러준 패스가 길었다.

가장 아까운 장면은 전반 27분. 이천수가 아크 왼쪽에서 수비수를 앞에 두고 날카롭게 땅에 깔아때린 슛은 골문 왼쪽 구석에 꽂히는 듯 했지만 몸을 던진 골키퍼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의 손끝에 맞고 나갔다.

전반 31분 중앙 수비 불안이 화를 불렀다.

문전으로 길게 넘어온 로빙패스가 훈텔라르와 강민수가 경합하다 문전으로 흘렀고 스피드 넘치는 슬로리가 김진규를 제치고 골키퍼와 1대1로 맞섰다.

김진규는 슬로리가 팔꿈치로 가격했다며 파울이라고 주장했지만 주심은 인정하지 않았다.

완전히 돌파를 허용하자 뒤늦게 달려온 김동진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슬로리의 어깨를 낚아채 넘어뜨렸다.

주심은 지체없이 휘슬을 불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운재가 방향을 읽었지만 키커 판데르 파르트의 왼발 킥이 더 강했다.

네덜란드의 1-0 리드.
훈테라르의 오버헤드킥이 넘어간 뒤 한국이 다시 찬스를 잡았다.

전반 41분 김정우의 측면 크로스를 조재진이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했지만 약간 빗맞았다.

조재진은 골반뼈를 다쳐 들것에 실려나갔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우성용, 손대호, 오범석을 투입하고 이어 최성국, 김두현을 넣어 반전을 꾀했다.

후반 5분 쇄도하며 때린 염기훈의 왼발 슛이 아까웠다.

이번엔 골키퍼 발끝에 걸렸다.

후반 17분 이천수의 아크 정면 프리킥이 야속하게 크로스바를 넘은 한국은 측면이 무너지며 추가 실점했다.

후반 26분 마리오 멜키오트가 오른쪽 측면을 완벽하게 돌파해 크로스를 올렸고 교체 공격수 디르크 카윗의 머리를 넘어간 볼은 무인지경에 기다리던 판데르 파르트의 왼발에 걸렸다.

이운재도 방향을 놓쳐 어쩔 수 없는 골이었다.

베어벡호는 반격에 나섰지만 공격 무기가 둔탁했다.

종료 직전 이천수의 사각 슈팅은 수비수에 굴절돼 옆 그물을 출렁였고 코너킥에서 이어진 김상식의 헤딩슛은 골문을 향했지만 수비수에 막혔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