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곧 천지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게 되는 것입니다

(然而人者天地之心也 人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

이율곡 일생일대의 최고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천도책'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조상은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사람의 도리와 인간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자 하였다.

반면에 자연을 이용하고 개발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라는 것이 서양의 합리주의적 사상의 출발점이다.

이 시대의 최고 화두가 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은 이러한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잘 어우러지도록 하는 노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오랜 기간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는 서로의 희생을 요구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되어 왔다.

더욱이 개발과 환경 문제는 승자와 패자를 낳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조합을 찾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다.

이런 역학관계가 국제적인 문제로 대두될 때 그 해답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종말론적 대재앙을 예견하자,지구 온난화 문제에 소극적인 우리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가치만으로 온난화 문제에 접근하기에는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많고,국가 간 역학관계도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과 2009년이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배출국이 되는 중국은 종말론적 재앙을 막기 위한 범지구적 노력에 동참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석탄과 석유의 사용을 줄여 이제 막 가동되기 시작한 성장의 엔진을 꺼뜨릴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미국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지구적 관심사보다는 자국 내의 석탄과 석유,자동차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

에너지 집약 산업의 비중이 높고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서둘러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할 입장이 아닌 듯하다.

어쨌든 환경문제가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좋든 싫든 환경문제를 등한히 하는 국가나 기업이 생존할 확률은 적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등 많은 국가에서 높은 환경 기준을 설정하고,이를 충족하지 못한 제품의 수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의 상품처럼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높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효과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임으로써 제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를 미리 인식하고 준비하는 기업과 국가는 기후변화 협약으로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컬럼비아대학 국제지구과학정보네트워크센터(CIESIN)가 기후변화 대처 능력을 등급화한 국가 순위를 발표한 바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가 상위 1~3위를 차지하고 일본은 6위,미국은 9위,우리나라가 20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남반구에 위치한 시에라리온,방글라데시,소말리아 등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로 오히려 이득을 보거나 적은 피해를 보는 반면 지구 온난화와 무관했던 나라들이 가장 피해를 많이 본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핵심적인 아이러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한 국가의 부와 기술 수준이지 기후가 아닌 듯하다.

실제 대재앙이 예견되었던 일이 기술 진보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맬더스의 인구론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맬더스가 예견하였듯이 식량 부족으로 인한 강제적 인구 억제라는 재앙은 발생하지 않았다.

석탄의 고갈을 막기 위해 강제적으로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었던 시절도 있었다.

석유·천연가스와 같은 대체에너지의 등장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시절 영국 런던시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말 배설물 문제였다.

마차 운행을 억제하는 각종 규제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은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남반구의 빈국들이 지구 온난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듯이 성장이 멈추고 가난해질수록 환경보호도 점점 멀어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환경과 성장이 조화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묘책이 필요하다.

그 해답은 성장을 통한 기술 진보이다.

기후변화도 빗나간 예언 중의 하나로 기록될 날을 기대해 본다.


조경엽 < 한경硏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