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는 기업인들이 서로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나서 기껏 하는 일이래야 값을 올려서 소비자를 등칠 궁리뿐이라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서로 짜고 담합(談合)이나 할 게 뻔하니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요즘 세상에 살았다면 다른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업들이 서로 만나서 소비자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항공사 간 전략적 제휴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항공은 델타항공,에어프랑스 등 8개 항공사와 함께 스카이팀(Sky Team)이라는 동맹체를 형성하고 좌석과 노선,마일리지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유나이티드 항공,에어 캐나다 등 13개 항공사와 더불어 스타 얼라이언스(Star Allaiance)라는 동맹체를 구성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항공사 간의 느슨한 연합체인 이 동맹체들은 애덤 스미스가 걱정했던 담합이나 카르텔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정반대다.

담합이나 카르텔이 나쁜 것은 서로 짜고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높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착취해서 생산자가 이익을 보자는 것이다.

반면 항공사 간의 동맹체는 좌석과 노선을 공유함으로써 소비자가 부담하는 항공요금을 낮춰주고 서비스는 높이는 수단이다.

원가와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소비자들의 이용횟수도 늘고 운항편수 역시 늘어난다.

기업들이 서로 '짜고' 생산을 늘리고 가격을 높여서 소비자를 이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소니가 각자가 가진 특허를 공유하기로 한 것도 서로의 원가를 줄여서 가격을 낮추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담합처럼 기업들이 서로 만나서 해로운 일도 할 수 있지만 이처럼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라 그 효과다.

기업 간의 협력을 통해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높인다면 나쁜 일이지만,위의 사례에서처럼 가격을 낮추고 생산량과 서비스를 늘리기 위함이라면 장려할 일이다.

이는 유화업계의 구조조정에 칼자루를 쥐게 된 공정거래 당국에 말해주는 바가 크다.

유화업계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름값이 오르다 보니 석유화학의 원료인 나프타값 또한 오르게 됐는데,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최종 제품값은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중국이나 산유국에서 새로운 석유화학 기업들이 등장해서 저가의 상품을 쏟아낼 전망이다.

지금도 이윤이 줄고 있고,앞으로는 더할 전망인 것이다.

이러다가는 2010년 이후에 고사(枯死)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최근 산업자원부 장관이 화두(話頭)를 꺼냈듯이 유화업계는 구조조정,그 중에서도 특히 합병으로 대응하고 싶어 한다.

합병은 생산라인의 제품별 특화 같은 것을 통해 원가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걸림돌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다.

인수합병으로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게 되는 기업은 공정위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석유화학기업 간의 합병이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애덤 스미스가 기업들의 담합을 우려했듯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염려하는 것도 합병 이후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린다는 사실 자체가 소비자에게 손해지만,그러기 위해 생산량을 줄여야 할 테니 그것 역시 소비자에게 해롭다.

그런 일을 막으라고 만들어진 공정위가 기업 간의 합병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중동에서 저가의 유화제품들이 몰려들 상황에서 과연 합병으로 몸집이 커졌다고 제품값을 올릴 강심장 기업이 있을까? 석유화학기업들끼리의 합병도 항공사들끼리의 동맹체처럼 원가와 가격을 낮추어 새로 생겨나는 중국 및 중동의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원가와 가격을 낮추는 일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

어려움에 직면한 석유화학기업 간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공정위가 우물안 개구리식 시각에서 탈피,글로벌 관점에서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