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크리에이션(creation)의 중심지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까지 팽팽한 긴장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느 방문과는 달리 이번엔 샤넬 하우스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 도미니크 몽크투아를 만나는 날이었기에.파리 방돔 광장 18번지에 위치한 방돔 스튜디오의 살짝 안이 들여다보이는 작은 방.블랙 카리스마를 풍기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도미니크가 보였다.

수많은 기자들과 뷰티 관련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마드모아젤 샤넬의 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자신의 스타일에 무척 엄격했다.

언제나 샤넬 수트와 모자를 쓰고 투명한 피부에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 여성은 거만하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여성들은 립스틱이나 마스카라없이 외출해서는 안된다."



요즘 여성들에겐 가혹할 만큼 바이블적이지만,따르지 않고 못배길 만큼 매혹적인 그녀의 철학은 도미니크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

10년 전쯤 프로덕트 론칭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도미니크의 메이크업 '매직 쇼(그가 표현하는 컨셉트와 제품에 대한 영감은 마치 마술을 보는 듯 보는 이를 홀리게 한다)'를 본 나는 그 아우라에 매료돼 '정말 멋져! '라는 말 외엔 할 수 없었다.

핵심적인 질문,마음에 드는 사진,그리고 정해진 인터뷰 시간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그의 냉정함에 약간의 긴장과 기대감을 갖고 질문을 던졌다.

19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세련된 모더니티를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여성이야말로 영감의 근원이죠.여성에겐 블랙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블랙을 기본으로,블루를 곁들이면 주위의 다른 색들이 가라앉게 됩니다.

그런 뒤 화이트와 레드가 등장하면 되죠.패키지는 기하도형적인 배열과 심플함을 기본으로 합니다."

매 시즌마다 선보이는 비슷한 블랙 케이스 안엔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미지 크리에이션의 결과물이 담겨져 있다.

한번쯤 반드시 발라보고 싶은 그런 창작물.예술품에 비싼 가격을 치르듯,우리는 손 안에 이 블랙 케이스를 쥐기 위해 지갑을 연다.

"모든 여성들 가운데 특히 마드모아젤 샤넬에게서 가장 큰 영감을 받습니다.

그녀의 사고와 철학을 바탕으로 흑백 영화 배우들의 메이크업에서 터득한 테크닉을 응용해 컨셉트를 만들었죠.그녀가 즐겨 발랐던 프렌치 레드 립스틱은 매우 모던하고 강하지만 우아한 매력을 뿜어내며 샤넬의 심벌이 됐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스타일은 '전통 유산'과 '혁신'을 결합해 표출해 내는 것.

도미니크는 '혁신'을 창조하기 위해 여행을 즐긴다.

수많은 나라의 박물관,갤러리 등을 보고 많은 보통 사람들과 만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광화문의 붉은 악마 물결을 보고 만든 루즈 드 서울(Rouge de seoul)처럼 어디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통해 '상상(imagination)'과 '영감(inspiration)'을 얻는 것.

메이크업의 핵심은 직접 느껴지는 피부의 촉감이다.

배우들에게 메이크업을 할 때도 손으로 얼굴을 만졌을 때의 바이브레이션(떨림)을 느낀 후에야 작업을 시작했다는 도미니크."언젠가 드골 장군의 고별식 장소에서 메이크업을 맡았는데 얼굴을 만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크리넥스로 땀을 닦아주면서 얼굴 골격의 구조를 파악했고 메이크업을 마칠 수 있었죠."

메이크업을 얼굴형이나 머리색에 맞춰 하는 게 아니라 골격에 따라 조명이나 빛의 영향을 고려해 장점을 뽑아내고 포인트를 줘야 한다는 도미니크의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의 화장품을 선보이기까지 4년의 공을 들인다는 도미니크는 작년에 선보였던 립스틱의 '클릭'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100여가지 소리를 비교분석한 뒤에 선택했다고 한다.

"샤넬 콤팩트의 표면을 마구 문질러보세요.

절대 스크래치가 나지 않아요.

이번에 론칭한 뉴 브러시들은 모두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죠.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모양(shape),커팅(cutting),선(line)을 완성하는 세밀함이 필요합니다.

20~3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이것이 럭셔리죠."

그렇다면 미래의 뷰티는 어떻게 변할까? 피부 표면에 무언가를 바르는 형태가 아니라 피부나 입술 자체가 직접 반응하게 되는 무언가가 탄생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혁신은 상상을 통한 창작과 하이테크다.

순간의 판매를 높이기 위한 제품 개발이 아닌 50년,100년이 지나도 모던하게 남아있을 뷰티 크리에이션이 국내에도 탄생하길 바라며 매직맨(magic man)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브레인파이 대표·스타일 칼럼니스트

http://www.cyworld.com/venus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