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秉 柱 < 서강대 명예교수 >

박수근 화백이 불우했던 50년대에 그려 외국인에게 헐값에 팔았던 그림 '빨래터'가 국내 미술품 최고 경매가인 45억2000만원에 팔렸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즘 국내 다른 미술품 값도 오르고 있고 소더비 등 해외 경매시장에서도 미술품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사람들 예술감상 안목이 갑자기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전설은 빗물에 잠긴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요즘 세상은 온통 돈의 홍수에 침몰되고 있는 셈이다.

예전 노아의 대홍수는 하늘에서 내렸지만 21세기 돈 홍수는 만성적 국제수지 적자국인 미국의 연방은행과 흑자국이면서 통화 캐리 트레이드의 진원지이기도 한 일본 중앙은행에서 쏟아져 나온다.

큰 물줄기 하나는 석유생산국에 흘러 들어 아라비아 사막을 흥건히 적시고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 숲을 생육시킨다.

아랍 석유부호들은 지구 곳곳의 랜드마크(명물) 건물과 런던 고급주택들을 싹쓸이 쇼핑한다.

그들은 돈 힘으로 중동에 국제금융센터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급성장하는 중국은 무역으로 벌어 축적한 1조2000억달러의 외환 보유액을 밑천으로 해외로 힘을 뻗치고 있다.

고도 성장에 소요되는 원자재 확보에 적극 나섰다.

고위관료가 앞장 서고 뒤따르는 국영기업을 통해 중동,중앙아시아,아프리카,남미,호주 등지의 에너지·철·구리 등 원자재 공급원 선점하기에 혈안이 돼있다.

며칠 전 중국 정부는 세계 굴지의 헤지펀드인 블랙스톤에 300억달러를 출자했다.

외국 펀드라면 막무가내로 배척하려는 한국보다 유연하고 슬기로운 자세이다.

근래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성장률이 높아도 물가상승이 없는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덕분이었다.

인구 13억의 저임금 중국산 수입품들이 대형 마트들의 진열대를 점령했기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중국이 주었던 저물가 혜택을 중국이 거두어들이게 예정돼 있다.

중국도 이미 임금 인상기에 들어섰다.

중국 내 고소득층이 두꺼워짐에 따라 의식주 생활 전반의 고급화·고가화가 확산돼 국내물가를 부추기고 있다.

사막화와 도시화로 경지는 줄어드는데 늘어나는 먹거리 수요 때문에 중국이 곡물 최대 수입국으로 전락될 것이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 우려 때문에 세계적으로 바이오 연료 사용이 권장되면서 식량용 곡류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져 농산물 가격폭등이 예상된다.

그래서 애그플래이션(agflation)이란 말이 급조되었다.

국내 그림 경매시장은 세계적 돈 홍수의 가느다란 지류일 뿐이다.

사실상의 계엄령 선포 때문에 냉각된 부동산 시장을 떠난 자금이 주식·펀드 등 자본시장과 미술품시장에서 안식처를 찾아 헤매고 있다.

환율 방어용으로 중앙은행이 푼 돈,전국 방방곡곡에 토지보상용으로 정부가 푼 돈들이 몰려 다니며 다른 자산으로 탈바꿈하며 물가를 부추긴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우려돼 자금을 조이는 것이 최근 추세이다.

잉글랜드은행이 바로 얼마전 금리를 올렸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인상 태세에 들어섰다.

굼뜬 중국 인민은행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금리조정의 찬반 양론 틈새에 끼어 일본은행은 눈치를 보고 있다.

서울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 조이는 일을 기피하고 있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오히려 재정사업 조기 집행 등 선심성 돈 풀기가 예정돼 있는 모양이다.

일반 물가 오름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꺾이지 않으면 부동산 관련 세수가 늘어나 정부는 웃음짓는다.

이미 세계 최고수준에 오른 다수 소비재 가격은 임금인상을 초래하고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1인당 국민소득이 명목적으로 2만달러,3만달러가 되어도 실질구매력이 떨어지면 헛된 숫자 놀음이다.

인기영합 정부가 이래서 문제다.

박 화백 그림 가격은 거시정책 실패의 눈금이요,생계에 허리 휜 서민의 눈물 척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