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토론자 숫자가 바뀌었는지부터 설명해 주세요."(방청석에 있던 한 주민)

"조용히 하세요. 설명은 무슨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야."(토론회 좌장을 맡은 S교수)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각 이해관계자를 대표하는 패널은 11명이었지만 사회자가 좌장 등 토론 진행자를 포함,14명으로 소개했기 때문.자신들이 내세운 대표의 발언 기회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한 주민이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지만 S교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주최로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의 이전 및 재건축 문제에 관한 첫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가락시장 이전을 요구하는 인근 훼밀리아파트 주민과 재건축을 주장하는 시장유통인 등 이해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해 이 문제에 쏠린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토론방식은 각 이해관계자를 대표하는 11명의 패널이 5분간 각자 주장을 펼친 뒤 방청객과 함께 질의·응답을 하는 식으로 정해졌다.

공사 관계자는 이 토론회가 이해당사자들끼리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법을 강구하는 건설적인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공정성과 침착을 유지해야 할 좌장이 흥분하자 주민들은 아예 '이전'이라고 쓰여진 머리띠를 두르고 완장을 차는 등 시위 모드로 돌입했다.

재건축을 주장하는 유통인 대표의 발표에는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자신들의 대표에 대해서는 환호성을 지르는 등 정상적인 토론진행을 방해했다.

이렇게 되자 시장유통인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돈도 많으신 분들이 왜 이러냐"는 등 주민들을 향해 온갖 비야냥과 욕설을 퍼부었다.

토론회가 이렇게 된 데는 이전가능 후보지가 공개되지 않는 등 공사 측의 부실한 자료 준비도 한몫했다.

어설픈 진행과 부실한 준비로 첫 토론회를 '시위현장'으로 만들어버린 서울시와 서울시농수산물공사가 과연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호기 사회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