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청은 올 들어 구역 내 보안등 가운데 절반을 켜지 않고 있다.

보안등이 꺼지면 범죄 발생률이 높아지지만 예산 부족으로 연간 10억원씩 들어가는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8년간 계속해 오던 축제 행사도 지난해부터 중단했다.

도로 보수공사 등 꼭 필요한 자체 투자 사업도 접은 지 오래다.

중앙정부가 쉴새 없이 쏟아내는 복지 정책을 수행하려면 다른 예산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구청의 올해 복지 예산은 1232억원.구청 전체 예산(2191억원)의 56.2%로 복지예산 비중으로는 전국 최고다.


부산 북구청도 마찬가지다.

이 곳도 예산의 절반 이상(53.8%)을 복지에 쏟아붓느라 다른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쏟아지는 복지 정책의 뒷감당에 지방 재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단순히 '돈이 없는데 그런 복지 사업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푸념 수준을 벗어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허우석 광주 북구청 주민생활지원국장은 "구민 47만명 가운데 2만2000명(4.7%)이 기초생활급여 수급자여서 구청은 보육 기초급여 등 복지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행정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산 펑크 지자체 수두룩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에 따르면 총 246개 지자체 중 140개 단체(57%)가 올 예산에 인건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특별·광역시 자치구 상황이 심각하다.

69개 자치구 중 55개(80%)가 인건비 마련을 위해 추경을 짜야 할 판이다.

부산시의 경우 전체 15개 자치구 중 연제구와 강서구를 제외한 13개구가 인건비를 마련하지 못해 추경안을 짜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 서구청은 올 들어 매주 화요일 오후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자동차세 체납자들을 대상으로 번호판을 압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공무원들과 단속 대상자들 간의 분쟁이 발생하고 민원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종철 예산계장은 "올해 공무원 인건비라도 제대로 마련하려면 체납 자동차세와 과태료를 잘 걷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 금정구청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퇴직으로 빈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올해 36명의 인건비 14억원을 줄일 방침이다.

부산진구청은 3개 국장 부속실을 폐지하고 부속실 여직원 인력을 일손이 부족한 부서로 발령 냈다.

◆지자체 간 예산 분쟁도

광주시 광산구 역시 예산 부족으로 상습 침수지역인 용봉지구 배수펌프장 건설을 매년 미뤄 오다 올 1월에야 착공에 들어갔다.

지자체 간 예산분쟁 조짐도 일고 있다.

이관수 부산시 동구청 예산 담당은 "2005년 광역시에서 296억원의 조정교부금을 받았는데 11월에 47억원을 도로 빼앗겼다"고 말했다.

광역시에서 부동산 재산세가 얼마 정도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배분했는데 8·31 조치로 거래세가 줄어들자 줬던 돈을 다시 환수해 갔다는 것.

이 담당은 "돈을 안 내놓으려 해도 다음 해 예산을 따야 하는 입장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올해도 11~12월 인건비 예산이 확보 안 돼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대책 없는 재정난

지자체들이 이같이 재정난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이후부터.참여정부는 집권과 함께 복지확대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복지 예산 확대에 나섰고 관련 예산은 2003년 이후 올해까지 4년 동안 무려 48.6% 급증했다.

복지 사업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얼마를 대면 지자체들도 얼마를 대야 하는 매칭 형태 사업들이어서 지자체들의 부담도 함께 커졌다.

생활급여 수급자가 많은 광주시 북구청의 경우 복지 예산이 2003년 636억원에서 올해 1232억원으로 4년 만에 무려 93.7% 늘었다.

특히 보육 예산과 기초생활급여 예산이 많이 늘면서 자체 세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는 광역시 자치구들의 타격이 컸다.

광주 동구청의 조명환 예산팀장은 "정부가 서울 중심의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다양한 투기억제책을 내놓으면서 지방의 거래도 뚝 끊겨 자치구의 거래 세수도 줄었다"며 "씀씀이를 늘려놓았으면 재원도 마련해 줘야 하는데 재원 대책은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박수진/울산=하인식/부산=김태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