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 실린 기사에 개인정보가 적시되지 않았어도 댓글 등을 통해 누군지 알 수 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되므로 포털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실상 '유사 언론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된 견제장치가 없었던 인터넷 포털의 기사 제공 행태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는 판결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최영룡 부장판사)는 18일 김모씨가 "허위 사실이 포털 등에 퍼지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며 다음 등 4개 주요 포털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16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2005년 네티즌들이 자신의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사와 관련해 여자친구 미니홈피에 딸의 억울한 사연을 적은 어머니의 글과 자신의 개인정보 등을 인터넷에 올리며 비방 댓글을 달자 정신적 피해 등을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래 기사에는 원고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숨진 여자친구의 실명과 미니홈피 주소 등을 통해 기사에서 가리키는 사람이 원고임을 쉽게 알 수 있었고,피고(포털)들은 원고에 대한 악의적 평가가 공개돼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원고를 비방토록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포털들은 "포털은 기사를 수정ㆍ삭제ㆍ편집하는 기능이 없으므로 뉴스 기사의 내용에 대해 책임이 없다.

기사 내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뉴스 제공자인 언론사가 책임지기로 계약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명예훼손 내용이 담긴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특정 영역에 배치해 네티즌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면 고의 또는 과실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이번 판결로 포털들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는 언론사의 기사를 눈에 띄는 위치에 게시하는데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된 검색어를 추천할 때에도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야 할 전망이다.

도가 지나친 댓글이 달릴 경우 이번 사건과 같은 송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고 측 담당 이지호 변호사는 "앞으로 포털도 신문사가 편집판을 영구보존하듯 웹페이지에 기사를 편집,배치한 화면을 일정기간 보관하는 등 영향력에 준하는 법적 의무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패소한 포털들은 재판부가 이번 판결을 통해 과도한 책임을 부과했다며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NHN 관계자는 "관련 기사에 대해 편집 행위를 한 적이 없고 이용자의 신고가 있기 전부터 내부 기준에 따라 악성댓글 등을 모니터했다"며 "악성댓글 모니터링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판결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뉴스를 단순 게시하는 포털에 법적 책임까지 요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항변했다.

다음 관계자도 "기사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명예훼손 내용이 담긴 기사에는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는 데도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